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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차크 칸국

킵차크 칸국

  • 찰스핼퍼린
  • |
  • 글항아리
  • |
  • 2020-06-08 출간
  • |
  • 360페이지
  • |
  • 150 X 220 mm
  • |
  • ISBN 9788967357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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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몽골이 중세 러시아 지배한 시기 본격 소개

그 노력으로 인해 중국의 몽골 정권인 원나라, 페르시아의 몽골 정권인 일 칸국에 대해서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 중국이나 페르시아와는 달리 러시아에서 몽골족은 상주常住하면서 통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몽골의 통치를 받았던 중국·페르시아 관료들이 몽골과 관련된 직접적인 자료를 남길 수 있었던 반면, 러시아 연대기들은 ‘침묵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기록했다. 이로 인해 역사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몽골의 지배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은 기록들 속에서 우연히 드러난 틈을 어렵게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틈을 찾아낸 역사가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몽골의 러시아 지배를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바라보았다. ‘타타르의 멍에Tatar Yoke’라고 하는 유명한 용어가 상징하는 바는 러시아 역사에 전형적인 고정관념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찰스 핼퍼린의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의 출간 의의는 척박한 땅에 내린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에 비유될 만하다. 컬럼비아대에서 중세 러시아와 몽골의 관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 분야에서 여러 저술과 90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한 보기 드문 전문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침묵의 이데올로기’에 빠진 러시아의 기록들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봤으며, 민족-종교적 접경지대의 특징을 염두에 두면서 양자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면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끼어 있었던 중세 러시아

저자에 따르면 몽골 시기에 중세 러시아는 두 개의 광범하면서도 조화되지 않는 세계 사이에 끼어 있었다. 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러시아는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고 접경에서도 가장 먼 거리에 있었다. 동방의 입장에서 관찰해보면, 러시아는 중국해中國海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뻗어 있는 거대한 몽골 제국의 영역에서 가장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 두 영역의 일부분이면서도 아직은 완전히 소속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세 러시아가 직면한 수수께끼 중의 하나였다. 문화적으로는 비잔티움 및 서구와 연결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이교도와 훗날의 무슬림이 거주하는 동방과 연계되어 있던 킵차크 칸국 치하의 러시아는 동방과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변칙적인 존재였다.
게다가 중세 러시아는 종종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복자들에 의해 정복된 땅이었다. 흑해와 카스피해 초원의 거대한 목초지는 러시아와 충분히 가까운 곳에 있는 대규모의 유목민 군대를 먹여 살릴 수 있었고, 그래서 몽골족은 직접적인 점령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결과는 러시아의 역사 그리고 러시아의 역사 저술 측면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와는 달리, 유럽과 중동의 기독교-무슬림 정복 사회들과 몽골의 영역에서는 정복자들이 소수의 귀족 계급이 되어 피정복민들에 에워싸인 채 거주했다. 정복한 땅에 거주하는 군주들은 이윽고 자신들이 지배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중국 원나라의 몽골족은 서예를 배웠고, 중국의 시를 이해했지만 킵차크 칸국의 몽골족 대부분은 여전히 말안장에서 낮을 보냈고 텐트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 결과 러시아는 여전히 치명적인 기병이었던 몽골족에 장기적으로 예속되었고, 문화적 차용이 일어났을 때에는 몽골족이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인들이 정복자인 몽골 영향을 받았다.

정복당하고도 정복당했다고 쓰길 거부한 역사

킵차크 칸국에서 러시아의 지위가 가진 또 다른 영향은 곧바로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정복 전쟁으로 인해 철저하게 황폐화되고, 토벌과 기분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침략에 의해 약탈을 당하기도 했고, 과중한 세금을 납부하면서 혹사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스스로의 지혜를 어느 정도 남겨두었다. 이는 침묵의 이데올로기라는 독특한 변형을 만들어낼 수 있게 했다. 이미 러시아는 중세의 민족-종교적 접경에 광범하게 퍼진 지적 전통 영역의 일부분이었고, 이 속에서 이교도와의 이로운 협조라는 현실이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침해해서는 안 되었다. 키예프 시기의 또 다른 유산 중의 하나는 종주권의 변화를 결코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초원 민족들과의 교류를 묘사하는 단어였다. 그래서 러시아가 몽골 제국에 합병된 뒤에 몽골족이 대부분 철수했을 때, 러시아 문인들은 그들의 패배라는 끔찍한 이념적 문제와의 직면을 회피할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사회의 종교적 토대가 위험에 처했을 때 현실을 무시해버리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러시아 작가들은 어떠한 실질적인 변화가 발생했음을 은연중에 부정하는 언어를 쓰면서 그들이 예속되었던 역사를 기록했다. 실제로 극소수의 몽골족만이 러시아 삼림 지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 문인들은 러시아가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는 허구를 계속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두 가지 이유로 러시아 지식인들이 진실을 마주하기를 꺼려했음을 강조했다. 첫째, 침묵의 이데올로기다. 이것은 상당히 흥미를 끄는 역사적 현상이고, 그 자체적으로도 연구의 가치가 있다. 둘째, 특히 침묵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기이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말할 수 있는 러시아에서는 역사 기록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했다. 이는 러시아와 킵차크 칸국의 역사에서 흥미를 끄는 측면 그 이상이다. 이렇게 독특한 지적인 태도를 분석하여 염두에 두는 것은 사실 몽골 지배 시기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중요한 정보 출처로 남아 있는 중세 러시아 문헌들을 의미 있게 읽어내기 위한 절대적인 필수 조건이다.

몽골은 러시아에 문화적, 경제적 침체를 가져오지 않았다

역사적 기록의 성격과 관련된 상황들과 몇 세기 동안 지속된 선입견들은 많은 역사가가 몽골 시기에 러시아 사회가 생기를 잃은 상태에 놓이고 혹은 문화적, 경제적 침체에 빠졌다고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적 풍토는 거의 전반적으로 러시아 중심의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기만적인 증거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특히 공헌하고 있다.
킵차크 칸국의 일부분으로서 러시아의 존재에 대한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 있고, 이는 중세 러시아 지식인들이 기독교 이데올로기-혹독한 억압과 격렬한 저항이라고 하는 단순한 관점-와 조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러시아의 문헌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역사가들이 거의 러시아의 동기와 능력의 관점으로만 몽골 시기의 사건들을 해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접근은 킵차크 칸국의 다양한 세력과 동기들을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킵차크 칸국 관료제의 발전, 대외 정책 그리고 내부 정치는 모두 러시아에 엄청나게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 시대를 바라보는 분명한 관점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와 몽골의 혼인, 공동전투 참전 등 교류 상황 철저히 파헤쳐

몽골 시기 러시아인들 삶의 더욱 정확한 모습을 찾아내고, 종종 적대적이었지만 결코 항상 그렇지는 않았던 두 민족 사이의 복잡하고 다면적이면서 장기적으로 지속된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였다. 러시아 공작들은 대부분 헛된 영웅담에 빠져들지 않고 충분한 용기를 보여줬다. 그래서 타타르족에 저항하는 데에 있어서도 러시아 공국들은 단합되지 못했다. 그 대신에 나타나는 것은 상황이 순조로운 것 같으면 타타르족에 대해 반항하고 그렇지 않으면 협력을 선택하는 다양한 공작들로 이루어진 ‘유동적인 모자이크’였다. 각각의 공국들은 지속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의 서로 다른 정체政體들을 연결시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맹 체계의 중심이었고, 그 연결은 아마도 킵차크 칸국 혹은 칸국 내의 파벌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러시아와 몽골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다른 양상들도 똑같이 복잡했고, 모두 기독교 정교회의 요구와는 마찰을 빚었다. 비록 러시아의 문인들은 방법론적으로 이를 숨겨보려고 했지만 별로 성공하지도 못했고, 다양한 평화적 교류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러시아와 몽골 전사들은 종종 함께 전투에 임했고, 러시아 공작들은 타타르족 부인을 본국으로 데려왔으며 규모가 큰 교역 집단이 사라이와 러시아 삼림 지대를 여행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 게다가 정확히 측량을 하기는 어렵지만, 러시아의 발전에 끼친 킵차크 칸국의 영향은 분명히 매우 컸다. 정복으로 인한 파괴는 예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킵차크 칸국에 의해 신중하게 육성되어 훗날에 나타난 풍부한 교역의 중요성도 측정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몽골의 후원 아래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재산, 영향력의 측면에서 거대하게 성장했다.
모스크바의 흥기와 러시아의 통일에 있어 킵차크 칸국의 정확한 역할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모스크바 공국이 권력을 강화하면서 훗날 팽창하는 과정에 타타르의 수많은 제도를 활용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간단히 말해서 중세 러시아에 끼친 몽골의 영향은 다양하고 복잡하면서도 강력했다.
이러한 퍼즐의 조각들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고, 조합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예를 들면, 바스카크 제도를 생각해보자. 바스카크는 러시아인들의 삶에서 분명히 대단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고, 틀림없이 이방인의 지배를 상기시키는 가장 짜증나면서도 지속적이었던 제도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하면서도 종종 숨어 있는 암시를 통해 바스카크 행정의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 그 암시는 마치 러시아 연대기들에 우연히 몰래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여기에는 이름이 나오고, 저기에는 사악한 행위들이 나오는 식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동시대의 사료로부터 얻은 정보의 대부분은 중세 러시아 문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집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기록을 남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찾아낸 것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증거는 행간行間을 읽어내고, 시종일관 말하고 있지 않는 내용에 주목하면서 얻어진 것이다. 또한, 문인들이 조심스럽게 만들어 놓은 은폐의 벽에 남아 있는 틈과 자신도 모르게 드러낸 몇 개의 설화, 일화 혹은 문서들을 찾으면서 얻어진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삶의 현실과 사회의 이념적 토대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기록하지 않는 문인들의 타고난 지적 습관은 때때로 그들을 신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
다. 모순을 무시하는 것에 익숙해진 문인들은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기 위한 열정 속에서 때때로 그 모순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조사를 하면 그 의미가 아주 달갑지 않을 수도 있는 증거를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타타르족 부인을 둔 러시아 공작의 이야기, 타타르족과 모스크바공국 사이에 맺어진 연합에 대한 맹세, 킵차크 칸국을 왕복했던 교역 집단에 대한 기록 등 조그만 빛이 새어나왔던 것이다. 이들로부터 러시아-타타르 관계의 진정한 이미지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은 물론이고 평화적인 측면에서, 정부와 상업에서, 사회와 경제에서 중세 러시아인의 모든 계층의 삶에 끼친 타타르의 영향이 가진 깊이와 복합성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작업의 일부이고, 러시아의 공작들이 킵차크 칸국의 칸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시대의 장막을 걷어 올리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금장한국, 킵차크 칸국 등 용어 문제부터 논의해야

저자가 관점의 변화를 통해 몽골의 러시아 지배 역사를 새롭게 서술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극복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러시아를 지배한 몽골 국가의 이름이 그 예다. 일부 기록에는 몽골의 러시아 원정 총사령관이었던 바투가 황금색 장막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가 세운 국가를 금장한국金帳汗國이라고 칭했고, 이를 받아들여 영어로는 ‘Golden Horde’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명칭은 13세기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훗날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리고 금장한국이라는 단어에는 바투가 이 국가를 건설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바투는 그의 아버지인 주치(칭기즈칸의 장남)가 받은 영토를 물려받고 이를 확장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그래서 최근 일부 연구자는 금장한국이라는 용어 대신에 ‘주치의 국가’ 혹은 ‘바투의 국가’라는 뜻의 몽골어 ‘주치 울루스’ ‘바투 울루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미 ‘Golden Horde’란 명칭이 일반화되어 있는 실정이지만, 용어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몽골 제국사와 러시아사를 다시 살펴보는 작업은 분명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금장한국보다는 ‘킵차크 칸국’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킵차크 칸국이라는 명칭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이는 킵차크 초원을 중심에 둔 국가라는 의미밖에는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몽골 제국이 정복한 민족의 이름인 킵차크가 몽골 국가의 명칭으로 사용된다는 것도 사실 너무 어색하다. 그럼에도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몽골의 러시아 지배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부분이 아직도 많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적도 없었고 여전히 미지의 공간으로 가득 차 있는 ‘킵차크 칸국’ 관련 연구서라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몽골 제국 역사의 심층적 분석을 위해서는 흔히 4칸국이라고 칭해지는 원나라, 일 칸국, 킵차크 칸국, 차가타이 칸국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까지의 몽골 제국사 연구는 주로 원나라와 일 칸국에 집중되었다. 킵차크 칸국을 다룬 이 책이 몽골제국의 광범위함과 중세 러시아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줄 신선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서문
감사의 말
1장 중세의 민족- 종교적 접경
2장 키예프 공국과 초원
3장 몽골 제국과 킵차크 칸국
4장 몽골의 러시아 통치
5장 러시아 정치에서 몽골의 역할
6장 몽골의 지배에 대한 러시아의 ‘이론’
7장 경제와 인구에 끼친 영향
8장 몽골족과 모스크바 공국의 전제정치
9장 몽골족과 러시아 사회
10장 문화생활
11장 결론

주 / 참고문헌 / 옮긴이의 말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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