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힘이 펴낸 여덟 번째 동시집
풀밭을 걸을 땐
발끝으로 걸어도
뒤꿈치로 걸어도
풀꽃에게 미안해
풀밭을 걸을 땐
내 발이
아기 새 발이면
참 좋겠다
- 「풀밭을 걸을 때」, 상상의힘
섬세한 서정으로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이화주 시인의 동시다. 아이의 곱고 안쓰러운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아이의 느낌을 온전히 표현해 냈던 동시인이 이번에는 물음표와 느낌표로 아이들이 세상과 마주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온축해 새로운 동시집을 펴냈다. 새 동시집 『나는 생각 중이야』는 말 그대로 생각 중인 어린이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그 생각의 근간에는 마주치는 세상에 대한 경이(!)와 그 경이로운 세상을 향한 물음(?)으로 채워져 있다.
맨 앞에서
빨빨 기어오르는
어린 담쟁이 잎
담 너머엔
뭐가 있지? 뭐가 있지?
제일 큰 ?를
가슴에 품고 있는
제일 쬐끄만 어린잎
- 「제일 쬐끄만 어린잎」
이처럼 어린 담쟁이잎은 비록 아주 작아도 가슴에 큰 물음표를 담고 있다는 시인은 말한다. 우리 아이들 또한 비록 아직은 어려도 그런 만큼 더 큰 물음표를 담고 있기를 소망한다. ‘윤석중 문학상’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수상이 입증하듯 이화주 시인은 우리 동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시인의 동시로 또 한 걸음 동시단은 둘레가 밝고 넓어졌다.
성장을 위한 디딤돌
이화주의 동시는 따뜻하다. 자연과 인정에 깃든 아름다움을 결 고운 시선으로 잡아낸다.
전철 안
졸고 있는 누나
옆자리 아줌마 쪽으로
점점점 기울어지다 바로 앉고
점점점 기울어지다 바로 앉고
‘여기 기대렴.’
소리 없는 말 알아들었나?
마침내 옆자리 아줌마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다.
- 「여기 기대렴」
이 짧은 동시에도 시인의 마음은 잔잔하게 담겨 있다. ‘여기 기대렴.’하고 가만히 어깨를 내밀어주는 아주머니, ‘그 말을 알아들었나?’ 의아해 하는 어린 화자 역시 그 몸짓의 의미를 이미 알아낸 다음인지라 오가는 마음의 결이 잘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의 결이야말로 결코 팽개칠 수 없는 성장의 디딤돌이다.
아이가 살아 있는 물음표의 세계
이화주의 동시는 넉넉한 공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는 대상에 깊이 천착한 시인만이 지닐 수 있는 공감이다.
누굴까?
‘바위 속에 있는 나를 꺼내줄래?’
부처님 말씀 알아들은 그 소년
매미처럼 바위에 붙어
쪼고 다듬으며
부처님 꺼내느라
아마 할아버지 되었겠지.
- 「마애불」
아이는 질문한다. ‘누가 바위 속에서 부처님을 꺼냈을까?’라고. 그리고 상상을 잇고 이어, 이제 그 소년은 할아버지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저 담백한 시인 듯하지만 시인의 성찰 속에는 소박한 아이의 질문이 새겨져 있다.
마음을 드러내는 느낌표의 세계
이화주의 동시는 새로운 발견과 마음의 감탄이 잘 드러나 있다.
소나무 아래서
하늘을 본다.
향긋한 솔잎 초록 우산
와, 바늘잎으로도 하늘을 가릴 수 있구나.
- 「바늘잎으로도」
아이는 솔밭에서 하늘을 본다. 그러나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 가느다란 바늘 같은 솔잎이라도 모이고 모여 하늘을 가린다. 그것이 시인에게는 발견의 놀라움이다. 무릇 동시는 이 새로움을 어린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장르이다. 이화주 시인의 신작 『나는 생각 중이야』는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찬 동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