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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의 문장

천하제일의 문장

  • 하지영
  • |
  • 글항아리
  • |
  • 2021-05-31 출간
  • |
  • 408페이지
  • |
  • 153 X 218 mm
  • |
  • ISBN 9788967359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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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18세기 개인의 발견’ 시리즈는 신유한, 조귀명, 이용휴, 유한준의 생애를 비평적 시각으로 조명한다. 동아시아에서 ‘개인’에 대한 사유는 전국시대 양주 이래로 시대 전환기마다 출현해왔다. 당대의 지배적 가치관에 동의 못 하거나 이질감,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 개인은 공동체와 거리를 두며 자기만의 느낌, 감정, 생각을 일구어나갔다. 이 시리즈는 그중에서도 자주 거론된 북학파가 아닌, 또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사유를 모색한 네 인물을 다룬다. 그중 이 책이 조명하는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1681~1752)은 뛰어난 문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얼로 태어난 비운의 문인이며, 당대의 신분적·계급적 한계와 부딪히는 과정에서 독창적인 문장과 문학론을 펼친 인물이다.
신유한은 우리에게 흔히 통신사행록 『해유록海遊錄』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해유록』 못지않게 빼어난 신유한의 다른 많은 작품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신유한의 문집 『청천집靑泉集』을 포함해 그가 남긴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충실히 복원하며, 그의 문학에서 삶을 읽어내고 삶에서 문학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신유한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회가 부여한 한계 때문에 좌절해야만 했던 선비의 포부, 그렇게 수십 년을 살며 벼려낸 경계 밖 주체로서의 감성과 사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진 ‘천하제일의 문장’에 대한 애착과 문인으로서의 기상일 것이다. 이로써 독자들은 당대와 불화한 개인이 어떻게 자기를 만들어나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하나를 볼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방대한 자료를 참조하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서술로 대중에게 다가선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신유한의 문집 『청천집』과 통신사행록 『해유록』은 물론이거니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신유한을 언급한 적 있는 여타 인물의 기록까지도 충실히 끌어모았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자료 모음에 그치지 않고, ‘경계 바깥에서 자기를 찾아나간 인물’이라는 관점으로 그의 삶에 서사를 부여하고 있다. 인물들 간의 서신이나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독자들은 마치 긴 옛날이야기를 읽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신유한이 직면했던 문제는 지금의 우리와도 멀리 있지 않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문장 때문에 중심부로부터 배척당하고 고민했던 그의 모습은, 자기가 일반적인 기준에 맞는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하지만 신유한은 남들에게 자기를 맞추기보다 자기만의 길을 개척했으며, 그런 그의 삶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위로와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문재를 가진 지방 서얼

“구구하고 비루한 곳에 거처하는 선비는 밭두둑 사이에서 몸을 일으켜보아도 그 재주가 미관 하나에도 얻을 수 없는지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천 리 먼 길을 오지만 벼슬길에서는 아무런 뜻을 얻지 못하고 물러날 적에는 또 황황하게 물러난다. 아, 슬프다.”(「목멱산기木?山記」)

신유한은 어릴 때부터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연보에 따르면 신유한은 돌잔치 날 『효경』을 집어 들고 어머니에게 배우기를 청했다고 한다. 5, 6세쯤에는 서당 선생에게 굴원의 「이소」를 가르쳐달라 청하기도 했는데, 선생이 그 작품은 어른들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신유한은 뜻을 알지는 못해도 혀가 있으니 소리를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신유한의 독특한 문학적 감각이 드러난다. 바로 글의 내용보다 글의 이미지와 음률 자체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서당 교육을 따르지 않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후 남들과 다른 문장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인 문장이 아닐 뿐, 신유한의 글은 틀림없이 명문이었다. 평균 합격 연령이 34.4세였던 당시의 진사시에 신유한은 25세의 젊은 나이로 합격했다. 그리고 30대 초반에 이미 자신의 문명을 세상에 떨치게 한 시 「촉석루에 제하다」를 내놓았다. 이 시는 많은 이에게 회자되어 300편에 가까운 차운시를 남겼으며, 중국에까지 전해져 좋은 평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33세의 나이에 장원급제했으며 이때 쓴 「작고석탕참부」는 당시의 일반적인 안목에 부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4년 가까이 마땅한 직책에 임명되지 못한 채 기다려야 했다. 지방 출신이라 기반이 없었던 데다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가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다림 끝에 봉상시에서 일하며 나라의 중요한 의례를 담당하게 되었으나 그마저 높은 직책으로 올라가지는 못했고, 어디까지나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 이상으로는 대우받지 못했다. 지방 현감 직책과 봉상시 업무를 오가는 동안 일부 문인과 관료가 그의 억울함을 논하기도 했지만 아직 출신과 신분의 한계는 공고했고, 그는 끝내 나라의 신하로서 출세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에 대한 억울함은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고 지은 글 「목멱산기」에 구체적이고도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해유록』으로 문명을 떨치다

“왼쪽으로 바라보니 큰 바다가 푸른 하늘에 맞닿아 천하에 아무것도 내 눈을 가리는 것이 없었다. 아늑하게 그 끝을 알 수 없고 드넓어 한계를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구주九州 안의 백공百工 만물, 고금의 서적, 사마천이 구경했다는 것과 초나라 좌사左史가 읽고 기록한 것이 탄환처럼 조그마한 것이었다.”(『해유록』)

그런 신유한이 기해년 조선통신사 파견에 제술관으로서 동행하게 된 것은 그가 문인으로서만큼은 널리 인정받고 있었다는 증거다. 제술관의 주요 임무는 통신사행 때 필요한 글을 작성하고 여러 일본 문사의 시문 수창에 응하는 것이었다. 17세기 후반부터 일본 문인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조선의 문학을 대표하는 제술관의 중요성은 더 중요해졌다. 그는 약 7개월의 사행 기간에 6000여 수의 시를 창화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길 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통신사행록 『해유록』을 저술했다.
『해유록』은 아름다운 일본의 자연에 대한 감상 외에도 일본의 풍속, 문물, 정치·사회적 정황 등을 치밀하게 기록하고 있어 통신사행을 떠나는 후대 문인들에게 일본에 대한 필수 참조 자료로 활용되었다. 『해유록』은 그 중요성과 문예적 성취 면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함께 ‘기행문자의 쌍벽’이라는 평을 받았다. 게다가 조선 후기에는 집집마다 소장하고 애송했을 정도로 활발하게 유통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전 시기의 통신사 문학이 일본의 물건이나 풍습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정보를 전달하기에만 그쳤던 것에 비해, 신유한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순수하게 일본의 산천과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거기에 매혹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는 등 통신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통신사행 이후 신유한의 문명은 더욱 높아졌다. 정6품 성균관 전적에 올랐으며, 그의 시구를 일본 사람들까지 외우고 있다는 기록도 있다. 더군다나 신유한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큰 뜻을 펼칠 수 없는 좁은 땅 바깥에 끝없는 바다와 넓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상상의 세계를 유람하며 자기 안팎의 경계를 넘고자 하는 신유한의 욕망은 통신사행을 계기로 더 강렬해졌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장

“부귀와 공업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나에게 달려 있지 않으며, 오로지 문장만이 남에게 달려 있지 않고 나에게 달려 있음을 알겠도다.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은 본분이 아니겠는가.”

신유한은 이름난 문인이었지만, 그 이름만큼 수군거림이 따라다녔다. 조선의 문사들은 신유한의 문장이 괴이하고 난해하며 정도를 따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왕세정, 이반룡 등의 전후칠자를 연상케 하는 문장을 구사했는데, 이는 조선 문인들에게 전범으로 받아들여지던 당나라의 시와 송나라의 산문과는 달랐다. 최창대나 윤순과 주고받은 서신을 보면 신유한이 특이한 문장을 구사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신유한은 어릴 적 일반적인 학습 과정을 따르지 않았으며 육경과 진한고문을 좋아하여 주로 읽었는데, 이런 취향이 진한 시대의 미감을 추구하던 전후칠자의 문풍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신유한은 도와 문이 별개라고 주장하는 것으로도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문인들은 성리학적 관점에 따라, 유교적 도를 보완해주는 의미로서만 문학을 인정했다. 그러나 신유한은 문학이 세상에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문학에는 독립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문장이야말로 개인이 온전히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정의하기에 이른다. 이는 신유한의 삶에서 비롯된 것인데, 지방 서얼이라는 한계와 상관없이 그가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유한의 문학은 그의 삶과 떼놓을 수 없어서, 그의 작품에는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문학세계를 해명하는 대목이 많이 등장한다. 신유한에게 중요한 주제는 바로 ‘나’였고, 이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자주 형상화된다. 그의 시에는 억울함과 분노, 서글픔 등이 공존했으며 후기로 갈수록 점점 그 길이도 늘어났다. 하지만 신유한은 스스로를 ‘용문’이라 명명하고 자기 내면을 광대한 ‘운몽호’라고 칭하는 등, 불우함을 토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과 문학적 지향을 확실히 했으며 문학에 대한 자부와 포부를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명성을 남기다

신유한은 특이한 교육법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당장의 과거시험에 연연하거나 정해진 과정을 따르지 않고, 제자들의 부족한 점과 보완해야 할 점을 세심하게 살펴 각각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주었다. 이는 기존의 형식이나 관습보다 ‘진眞’, 즉 세계와 사물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문학의 길이라는 그의 입장과도 관련된다. 박이곤, 정원시, 원경하, 정란 등, 신유한의 문하에서 배출된 문인들은 요직에 진출하고 글과 공적으로 이름을 남겼다.
신유한 개인의 삶은 불우했지만 그의 문장만은 불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문집 『청천집』의 서문을 쓴 이미는 신유한이 뛰어난 문장으로 시대와 한계를 극복했다고 평가했으며, 『청천집』 속집의 서문을 쓴 권연하 역시 신유한을 두고 몇 세대에 한 번 나오는 영재라며 극찬했다. 훗날 성대중은 신유한이 남쪽 땅의 일개 선비로 태어나 30년 동안 문단을 주도했다고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청천집』은 수없이 인쇄하는 바람에 목판이 금방 닳아버렸다고 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기 위해 후대 문인들이 필사한 판본이 현재까지 다수 남아 있다.
그의 삶은 결국 이질적인 개인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던 조선 후기에서 ‘나’라는 존재와 욕망을 이야기하려는 일군의 흐름에 위치한다. 쉽사리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종종 좌절하기도 했고 경계 바깥을 서성였으나, 문학으로 그 단단한 벽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의 문학은 주류가 되지는 못했지만 자신만의 새로운 경계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1장 밀양에서 다시 가야산까지
1. 시골 유생 신유한
가야산, 내가 돌아갈 곳 | 대나무골에서 태어난 아이 | 서얼이라는 굴레 | 특이한 문장 수업
2. 서울 나그네살이
서울 가는 길 | 촉석루에 서다 | 임춘을 다시 세상에 부르다 | 장원급제하다 | 오랜 기다림 | 봉상시 관원으로서의 삶 | 남산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3. 지방 고을을 전전하며
척박한 고을의 수령 | 지나치게 부드러운 원님 | 어쩌면 삶이 이리도 고달픈가
4. 가야산 기슭에서 운명하다

2장 바다 건너 일본으로
1. 멀리 일본에서 노닐다
2. 오랑캐가 사는 신선의 땅, 일본
신선의 땅 | 화려한 도시 | 긴장과 갈등 속 사행길
3. 일본 문사와의 만남
사행의 동반자 아메노모리 호슈 | 겟신 쇼탄과의 신교 | 일본 문사와의 수창 | 도리야마 시켄의 시를 읽다
4. 통신사행, 그 후_

3장 나를 알아줄 이 누구인가
1. 마음이 같은 벗, 최성대
진정한 지기 | 필원에서의 밤 | 평생을 함께하다 | 부부로 기억되는 우정
2. 불우함을 위로받다
눈 오는 밤의 시회 | 서얼 차별을 철폐하라
3. 문예에 노닐다
김창흡의 조언 | 이병연과의 시교 | 적벽부를 모의하다 | 함께 옛것을 이야기하다 | 영매의 해산금 연주
4. 마음의 스승
연천에서 만난 허목 | 최치원을 사모하다

4장 경계 밖을 노닐다
1. 옛글에서 길을 찾다
문장으로 논란을 일으키다 | 선진양한의 문풍을 꿈꾸다 | 천기에 응하고 마음의 소리를 담아라 | 글은 글일 뿐
2. 나는 방외에서 노니는 자
『산해경』을 펼치며 세상 밖을 신유하네 | 모든 것은 물거품이다 | 노승과의 이야기
3. 천하제일의 문장
홀로 가는 나그네 | 한계 없는 용문 | 정신까지 모사하다 | 허와 실이 공존하는 문장 | 참을 얻는 놀이 |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

5장. 일대의 문호
1. 후학을 양성하며
신유한의 특이한 교수법 | 신유한과 그의 문도
2. 청천 신유한, 그 후
30년 동안 도성의 문단을 주도하다 | 경계 밖 새로운 경계를 열다

주註
청천 신유한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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