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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 최석정의 정치사상과 학문세계

명곡 최석정의 정치사상과 학문세계

  • 신병주외
  • |
  • 한산문화연구원
  • |
  • 2021-11-15 출간
  • |
  • 344페이지
  • |
  • 155 X 226 X 18 mm /517g
  • |
  • ISBN 979119763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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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명곡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은 전주최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고 영의정까지 역임한 최명길(崔鳴吉)의 손자이다. 초명은 석만(錫萬), 호는 명곡(明谷) 또는 존와(存窩), 자는여화(汝和)다. 아홉 살의 나이에 『시경』과 『서경』을 암송했고, 열두 살이 되어 『주역』을 도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자 주위에서 신동으로 이름났다.

숙종대 윤증(尹拯), 남구만(南九萬) 등과 함께 소론의 영수로 활약하면서 정계와 사상계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최석정은 숙종 후반기에 10번 이상 정승에 올랐는데, 이처럼 오랫동안 최고의 직책에 자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온건하고 타협적인 정치 노선이 큰 작용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관의 기저에는 사상적으로는 주자성리학에만 매몰되지 않고 양명학, 음운학, 수학 등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지는 개방적 입장이 있었다.

그러나 최석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한국사 교과서에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 조선후기 정치사 연구의 주요 흐름이 당쟁사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의 최석정처럼 국익과 민생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인물의 모습은 많이 가려져 버렸다. 본책은 최석정이 지금의 시대에 왜 필요한 인물인가를 강조하기 위해 최석정을 다시 소환한 연구 성과들을 모았다. 최석정의 정치사상과 학문 세계를 조명한 연구 성과들을 모아서, 최석정의 진면목을 찾아보고자 한다.

숙종 42년(1715) 70세의 일기로 죽었을 때 실록에 남겨진 졸기(卒記)를 보노라면 최석정은 성품이 바르지 못하고 공교하며 경솔하고 천박하였으나,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이 있어 여러 서책을 널리 섭렵했는데, 스스로 경술(經術)에 가장 깊다고 하면서 주자(朱子)가 편집한 경서(經書)를 취하여 변란시켜 삭제하였으니, 이로써 더욱 사론(士論)에 죄를 짓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번 태사(台司:三公)에 올랐으나 일을 처리함에 있어 전도되고 망령된 일이 많았으며, 남구만을 스승으로 섬기면서 그의 언론을 조술(祖述)하여 명분과 의리를 함부로 전도시켰다. 경인년(1710)에 시약(侍藥)을 삼가지 않았다 하여 엄한 지시를 받았는데, 임금의 총애가 갑자기 쇠미해져서 그 뒤부터는 교외(郊外)에 물러가 살다가 졸하니, 나이는 70세이다. 뒤에 시호를 문정(文貞)이라 하였다(《숙종실록》 권56, 41년 11월 11일)라고 하였듯이,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놓고 있다. 노론들이 주도하여 편찬된 실록이기에 그 편향됨이 매우 심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1701년 영의정에 임명된 최석정은 장희빈 사사(賜死)를 반대하다 충청도 진천에 유배되었고, 이듬해 석방되어 판중추부사를 거쳐 다시 영의정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전후 8차례에 걸친 영의정 역임이었으니, 숙종 중~후반기 혼돈의 정국들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최석정은 남인과 서인이 대립하고, 노론과 소론들이 분열되던 혼돈의 시대를 살았지만, 급진적인 과격함 보다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정치 노선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인물이다. 당대에 주류적 사유 세계를 지배했던 예학이나 존주대의론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성에 바탕을 둔 선대의 학문과 사상을 오롯이 물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리학을 보완할 수 있는 천문학이나 음운학과 상수학은 물론 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을 자기 것으로 끌어들여 녹여내는 용광로나 다름없었다.

그의 가문 이력을 보면, 광해군 시절 북인정권 치하에서 축출되었다가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던 증조부 최기남(崔起南)은 성혼 학통을 이어받았다. 조부 최명길이 현실론을 앞세운 주화론을 견지한 것이나, 양명학에 관심을 보인 것도 그런 영향으로 추정된다. 손자 최석정이 일찍이 박세채ㆍ남구만 등 소론계 인물들을 사사하여 다방면의 학문을 익인 것도 가학(家學) 영향이 적지 않았다. 좌의정을 지낸 아우 최석항(崔錫恒) 역시 경종과 영조시기의 치열한 노론과 소론의 공방전이 벌어질 때 온건파 소론 영수로 활약했고, 아들 최창대(崔昌大)가 아버지 뜻을 받들어 ‘노론은 당(黨)을 위주로 의론하여 사류들이 싫어하는 반면 소론은 당을 초월해서 일을 논의하여 공평하게 처리한다.’라고 주창했던 자신감도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앙 정국 흐름은 노론세로 급격하게 기울어져 갔고, 급기야 궁궐 안에 대보단(大報壇) 설립을 계기로 대명 의리론이 크게 일자, 최석정 가문의 입지는 좁아지기 시작했다. 주화론자였던 최명길에 대한 공격 수위가 갈수록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숙종 임금이 말년에 내린 병ㅣ신 처분으로 조선 후기 정국이나 사상적 흐름들이 노론 독주체제로 치닫게 되면서, 척화파와 그 후예들만을 기리는 정치사회적 분위기로 흘러갔으니, 주화파 후예이자 소론을 이끌던 최석정이란 인물이 상대적으로 묻혀 갔던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하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을 놓고 내린 사서(史書)의 평가는 춘추필법 자세로 엄정해야 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일진데, 그런 차원에서 《숙종실록보궐정오》에서 수정한 최석정 졸기를 놓고 앞의 것과 비교해 보면, 성품이 청명(淸明)하고 기상이 화락(和樂)하고 단아했으며, 총명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어려서 남구만(南九萬)과 박세채(朴世采)를 따라 배웠는데, 이치를 분별하여 깨달아 12세에 이미 《주역》에 통달하여 손으로 그려서 도면을 만드니, 세상에서 신동이라 일컬었다. 구경(九經)과 백가(百家)를 섭렵하여 마치 자기 말을 외듯이 하였는데, 이미 지위가 고귀해지고 늙었으나 오히려 송독(誦讀)을 그치지 않으니, 경술(經術)·문장(文章)·언론(言論)과 풍유(風猷)가 일대 명류의 종주가 되었다. 산수(算數)와 자학(字學)에 이르러서는 은미(隱微)한 것까지 모두 수고하지 않고 신묘하게 해득하여, 자못 경륜가(經綸家)로서 스스로 기약하였다. 열 번이나 태사(台司 : 三公)에 올라 당론을 타파하여 인재를 수습하는 데 마음을 두었으며, 《대전(大典)》을 닦고 밝히는 것을 일삼았다. 신사년(1701)에 세 번 차자를 올려 미움 받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것이었으니, 조태채(趙泰采)가 매복(枚卜:정승 선발 절차과정)에서 대신(大臣)의 풍도가 있다고 했다. 소관(小官)에 있을 때부터 임금의 권애(眷愛)가 특별하여 만년까지 쇠하지 않자, 당인(黨人)들이 이를 매우 시기하여 처음에는 경서를 훼파(毁破)하고 성인을 업신여겼다고 무함하다가
마침내 시병(侍病)하는 데 삼가지 않았다고 구죄(構罪)하니, 하루도 조정에 편안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편안히 지내면서 끝내 기미(幾微)를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으니, 사람들이 그의 너그러운 도량에 감복하였다. 만년에는 더욱 경외를 왕래하다가 황야(荒野)에서 죽으니, 식자들이 한스럽게 여겼다.라는 바와 같이, 사뭇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소론들의 입장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차


간행사

서문

제1편. 명곡 최석정의 정치사상
1 崔錫鼎의 生涯와 思想
2 明谷 崔錫鼎의 現實認識과 政局運營論
3 숙종대 소론 변통론의 계통과 탕평론
- 明谷 崔錫鼎을 중심으로
4 17세기 중·후반 소론학자의 사상
- 윤증·최석정을 중심으로
5 崔鳴吉·崔錫鼎의 庶?許通 상소와 지식인의 역할

제2편. 명곡 최석정의 학문 세계
1 少論系 自得的 학문 논리의 연원과 전개
- 崔錫鼎家를 중심으로
2 최석정의 《황극경세·성음창화도》에 대한 인식
3 明谷 崔錫鼎, 易數로 邵康節과 소통 후 남긴 메시지 탐색
- 『經世訓民正音』 坤冊 聲音篇과 『皇極經世書』 역수론 비교를 중심으로
4 『구수략(九數略)』, 송대 도서상수학으로 짜인 조선수학서
5 崔錫鼎의 산학연구와 《養窩集》의 저자 李世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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