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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석 평전

장두석 평전

  • 안오일
  • |
  • 전라도닷컴
  • |
  • 2022-05-18 출간
  • |
  • 371페이지
  • |
  • 153 X 225 mm
  • |
  • ISBN 979118551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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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어려웠던 한 시대를 휘여휘여 흰 두루마기 자락 휘날리며옹골지게 살아내신 해관 선생의 일대기“나라의 진정한 민주화도 조국의 통일도 이루지 못하여 하늘에 죄를 지었으니 빌 곳이 없다”는 유언을 남기고 2015년 우리 곁을 떠난 해관(海觀) 장두석의 생애와 마음을 읽는다.
‘겨레의 몸과 마음 살리며 통일춤 덩실덩실’이란 부제가 붙은 《장두석 평전》(전라도닷컴).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안오일씨가 아픈 사람들과 아픈 세상을 보듬고 치열하게 살다 간 장두석 선생의 한평생을 담아냈다.
책의 시작은 2003년 백두산 천지 앞에서 올린 통일기원 천제 장면이다.
뜨겁고 벅찬 그 의식(儀式)의 성사를 두고 한 동행자는 “이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라는 소회를 밝힌다.
장두석의 생애를 관통한 간절한 통일 열망이 함축된 장면이자 한번 마음먹은 일은 기필코 이뤄내고야 마는 남다른 의지와 추진력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아픈 사람들과 아픈 세상을 보듬은 한평생
장두석은 1938년 화순 이서면 장학리 학당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와 분단, 독재시대를 거치며 겪은 고통은 그를 농민운동·빈민운동·환경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으로 이끌었다.
또 소년시절 심한 간질환과 폐수종을 앓다 고향 화순의 옹성산에 들어가 단식과 생채식 등으로 병이 완치된 체험은 그를 ‘자연’과 ‘생활’에 바탕을 둔 민족생활의학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내 고통이 없이는 이웃에게 줄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내 고통이 수반될 때 이웃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평생 지향인 통일세상, 건강세상은 모두 자신이 겪은 고통으로부터 잉태된 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될 성부른 떡잎’이었다. 옳지 않은 일에는 끝까지 대항하고 옳다고 믿는 일은 될 때까지 밀고 나간 기질은 어릴 때부터 그 싹을 보였다. 때는 일제강점기, 학교에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닦달하자 반장이었던 장두석은 학교발표회에 나가 주어진 주제로 말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외쳤다. “일본놈들이 우리 집 놋그릇을 몽땅 빼앗아 갔어요. 그걸로 총알 만들어 전쟁하려고 한다는 거 알아요. 또 식량도 다 가지고 가서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듭니다. 그런데 왜 내 이름을 그런 일본놈들 이름으로 바꾸라는 겁니까? 나는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겁니다!” 화순 이서 소학교 2학년 중퇴, 식민지 아이로 태어난 장두석의 학교생활 전부다. 여순사건의 여파로 1949년 집안 형님을 비롯 마을 청년 일곱 명이 총살을 당한 사건이나 1950년 6·25전쟁의 와중에 또 한 명의 집안 형님이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되어 저수지에 수장당한 사건은 소년 장두석에게 큰 슬픔과 의문을 불러일으켰다.‘왜 같은 민족끼리 죽이는 거야?’라는 비통한 의문은 ‘우리 민족은 반드시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평생의 신념으로 이어졌다.
훗날 민족경제학자가 된 박현채와의 만남도 소년 장두석을 성장시켰다. 평생의 동지이며 친구이며 스승이었던 박현채는 소년 장두석에게 “너는 앞으로 무등산을 지키는 두목이 돼라”는 말로 또 다른 꿈의 씨앗을 심어 주었다. “분단병부터 해결해야, 하루 빨리 통일이 돼야”“몸의 병은 정신의 피폐함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지. 난 모든 병은 분단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혀. 그 근원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치료는 힘들어지게 돼 있어. 우리는 무조건 통일이 되어야 혀. 분단은 형제간을 찢고 우리 자신을 찢는 행위니까.”통일이 되지 않는 한,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게 장두석의 생각이었다. “분단병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돼야 합니다.”그의 건강 강의는 언제나 ‘기, 승, 전, 자주평화통일’이었다.“산다는 게 뭐여, 흥이 난다는 거 아녀? 흥이 없으믄 살아있어도 산목숨이 아니제. 흥이 뭐여. 그게 신명인디 그 신명도 건강해야 나는 거제. 분단으로 아프면 신명이 나겄어? 분단이란 놈은 신명을 다 빼앗아 가버리고 결국 병나게 하는 거여.”
장두석은 자연건강법을 이야기할 때마다 “인체와 자연, 자연과 사회, 민족과 국가는 둘이 아니여. 하나의 유기체로서 인체, 자연, 사회가 유기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 몸은 망가질 수밖에 없어”라고 역설했다.병든 사회를 고치기 위해 장두석은 혁신계 정당인 진보당과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활동, 야학과 가톨릭농민회 활동, 그리고 신협이나 양서협동조합 활동에도 앞장섰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자연의 순리 아닌가. 서로 힘을 모아 더 어려운 사람을 돕다 보면 다 같이 잘 살게 되겄제.”
“의로운 일을 보면 몸과 마음을 아끼지 말고 참여해야 하며, 불의에는 절대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장두석이 평소 자주 했던 말들이다. 그는 그 말대로 살았고,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독재정권에서 체포와 투옥을 거른 적이 없다. “우리들이 총알받이가 됩시다. 탱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갑시다. 광주시민들이 다 죽어 가는데 우리가 먼저 탱크 앞에 가서 죽읍시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때는 ‘죽음의 행진’ 참여 등으로 수배돼 군사법정에서 12년형을 선고받고 사면·석방되기도 했다.“막히고 비뚤어진 곳을 터주고, 곧게 펴주고”“말이 껍질이면 행동은 알맹이여. 눈물은 같이 흘려줘도 내 돈 꺼내주는 건 힘든 거여. 허지만 그게 진짜여. 그게 함께 나가는 길이제.”
장두석은 없는 형편에도 꼭 필요한 일이고 의로운 일이라면 서슴없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보금자리인 ‘통일의 집’ 마련과 운영을 위해 신협에서 수천 만원을 대출받기도 했으며 북녘돕기운동을 꾸준히 벌였다.
장두석이 했던 모든 운동의 바탕에 자리한 것은 민족주의였다. 장두석은 늘 한복 바지저고리 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역사적 소명이 있는 곳, 민중의 아픔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의 흰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였다.“뿌리 없는 생명은 없는 것이여.”“우리 문화를 살리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일이제.” 장두석은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고향의 문화와 역사를 되살리는 일에 앞장섰으며, 우리 민족에게 맞는 식·의·주를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우리 조상들은 병이 들면 우선 하늘을 바라보고 산과 강을 돌아봤어. 혹시 하늘의 뜻이나 자연을 거스른 적은 없었나 스스로를 살피면서 말여. 병든 걸 잘못된 생활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제. 병이란 약이나 의사가 고쳐주는 것이 아니여. 자기 몸은 자기밖에 못 고치는 거여! 자기 자신이 자연과 더불어 고쳐나가는 것이제.”
민족생활학교와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를 통해 겨레의 몸과 마음을 살리는 데 힘썼던 장두석.
“병이란 원래 없다. 막히고 비뚤어진 곳을 터주고, 곧게 펴주면 다 낫는다”는 그의 믿음은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민주, 통일운동에 그토록 헌신했던 이유다.
불의한 현실에 청천벽력 같은 불호령을 내리던 ‘시대의 어른’이 그리운 오늘이다.

■ 해관(海觀) 장두석(1938∼2015)
1938년 전남 화순 이서면 장학리 학당마을에서 태어났다. 폐수종과 간장질환으로 옹성산에서 토굴생활을 하며 자연의 이치를 익힌 뒤 ‘자연의학’에 몰두하였다. ‘자연건강대학’을 세워 건강하게 사는 길을 안내했고, 광주양서협동조합 설립을 이끌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수습대책위에 들어가 계엄군의 무력진압을 막고자 ‘죽음의 행진’을 함께 했고, 505보안대에 구속되어 1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특별사면되었다.
민족생활학교를 열어 200회에 걸쳐 4만여 명의 수련생을 교육하였다. 사회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 의장, 6·15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대표, 통일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아 북녘돕기 및 통일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사)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를 만들고, 전국 각지에 민족생활관을 열어 겨레의 몸과 마음을 살리는 데 힘썼다.

■ 펴내는 말아들인 저는 ‘자갈밭에서 가라지가 피듯’ 아버지의 그림자를 이어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하늘은 땅을 위해 우로(雨露)를 아끼지 않고, 땅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듯, 이웃을 위해 인정을 아끼지 말라’ 하시고, ‘생명은 자연이고 강산은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은 저에게 준엄한 가르침이었고, 제가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는 크나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시민들과 함께 민족의 자주와 평화통일, 문화예술운동을 쉬지 않고 해나가겠습니다.
- 장영철 해관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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