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녀석이 멀리 날아가길 바랐고,
동시에 내 곁에 남기를 바랐다.“
새와 대화를 하는, 그러나 서로는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두 남자.
야생에서 길듦으로, 이성에서 광기로, 자유에서 속박으로
그리고 다시 자유로 돌아가는
이것은 ‘돌봄’과 ‘변화’에 관한 경이로운 이야기이다.
★ 2020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회고록
★ 2021 웨인라이트상 최종 후보작
★ 커커스 리뷰 선정 베스트 논픽션
★ 스펙테이터 서평단이 뽑은 최고의 책
★ 엘튼 존, 닐 게이먼, 헬렌 맥도널드(『메이블 이야기』 저자) 강력 추천
★ 핑크플로이드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의 아들 찰리 길모어가 쓴 화제의 데뷔작
기쁜 듯 내지르는 ‘깍깍’ 소리 한 번, 장난스런 몸짓 한 번에
우리는 모두 이 새에게 대책 없이 빠져들었다
어느 날 여자친구 야나가 폐차장의 배수로에서 떨고 있는 아기 까치를 집으로 데려온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는 정도로 작고 연약한 새였다. 저자는 “스쳐 지나갈 것에 애착을 품을 필요는 없다”며 까치에게 애써 무관심한 척하려 했지만, 한 생명체가 보석 같은 파란 눈으로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며 탐색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이 아기 새를 구하고 보호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서양에서 까치는 미움받는 새다. 까치를 돌보는 일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고 할머니에게 전화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뭐 하러 까치를 살려? 그건 몹쓸 것들이야. 물에 던져버려.” 그들 또한 애초에 까치를 반려동물로서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새가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자연으로 보내주려고 했다. 야나와 저자의 정성스런 보살핌 속에 새는 점차 건강해지고 그들은 이 아기 까치에게 ‘벤젠’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놓아주는 것과 반대 방향의 행동이지만 휘발성, 달아난다는 개념을 담은 벤젠은 그들의 까치에게 딱 맞는 이름이었다.
까치를 키우는 일은 당연히 만만하지 않았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새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까치에 대해 저자가 보여주는 짜증과 애정이 섞인 설명에 웃으며 공감할 것이다. 일단 매일 이른 아침 아침밥을 내놓으라는 새의 울음소리에 일어나 비몽사몽 상태로 벌레의 머리를 부수고 살을 으깨 까치에게 바쳐야 한다. 까치는 하루 종일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콘센트, 전기선, 선인장, 선글라스 등을 탐색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고, 특히 아무데나 똥을 싸고 아끼는 식물을 망가뜨린다. 자연계에서 손꼽히는 저장 동물답게 노트북의 USB 포트, 양말 주름 사이, 양장본 책의 헐렁한 표지 안, 인간의 머리카락 속 등에 고깃점을 숨긴다. 장난감과 음식이 넘쳐나는 벤젠의 삶은 거의 ‘중세 군주’와 비슷해 보인다.
이런 말썽꾸러기지만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녀석이 날아보려다 0.1초 만에 떨어지는 모습은 너무 귀엽고 짠하며, 손에 살포시 내려 앉아 머리를 부비며 애교를 부릴 때는 한없이 사랑스럽다. 욕실 거울 앞 수전에 서서 혼자 장광설을 쏟아내기도 하고, 함께 음악을 감상할 때면 자기도 같이 깍깍 노래를 부른다. 종종 인간의 말을 내뱉거나 웃음소리를 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그렇게 벤젠은 가족 모두의 애정을 받으며 식구가 되어갔다. 과연 이 새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네가 이 일을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네 아버지야.”
정말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까치에 대한 이런 감정은 저자의 또 다른 이야기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준다. 바로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 히스코트에 대한 이야기다. 히스코트는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작가, 배우이며 무정부주의자였다. 그는 저자가 생후 6개월 때 아기와 어머니를 남겨둔 채 사라져버렸다. 이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저자에게는 새로운 가족(핑크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의 가족이 되었다)이 생겼지만 생부가 남긴 빈자리는 컸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이 어린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이후 히스코트를 만나려는 노력이 계속 실패하면서 저자는 10대와 20대 내내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하며 생부에 집착한다. 10대부터 마약중독에 시달렸고, 20대에는 약과 술에 취해 영국의 전몰 군인 위령비 세너태프에 올라가 난동을 부려 전 국민의 공분을 사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온 가족이 비난 여론과 협박에 시달렸고, 저자는 감옥에 가기까지 했다.
까치가 집에 오면서, 저자는 그의 삶에 ‘유령’처럼 드리워져 있던 히스코트 역시 까마귓과 새인 갈까마귀를 키웠고, 시도 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평행이론 같은 사실은 그를 불안하게 한다. 자신에게도 생명을 버리는 유전자가 있을까봐, 갑자기 미쳐버리는 성향이 핏속에 흐를까봐, 히스코트의 잘못을 반복할까봐 두렵다. 이런 고통과 슬픔의 이야기는 그들이 건강하게 키운 까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얽혀 들어간다. 까치를 돌보면서 생명을 돌보는 일의 기쁨과 숭고함을 알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투병 중인 히스코트를 찾아가 화해를 시도하고, 그가 죽은 후 그가 남긴 자료들을 살피며 저자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환상의 아버지’를 차차 떠나보낸다.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나를 규정하지 않으며, 어떻게 길렀느냐가 어떻게 타고났느냐를 이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생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저자는 과거와 결별하고 드디어 정신적으로 독립해 나만의 ‘둥지’를 꾸릴 수 있게 된다. 마치 ‘까치가 그랬듯이’ 말이다.
“까치 한 마리는 슬픔”을 뒤집어 “까치 한 마리는 기쁨”으로 만든
아름다운 자연 에세이이자 감동적인 성장기
우리나라에서 까치는 길조로 통한다. 까치를 보면 반가운 소식이나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서양에서 까치는 흉조다. 악마를 불러오는 새로 악명 높다. 또한 수다쟁이, 반짝이는 물건을 모으는(훔치는) 새로도 알려져 있다. 영국에는 “까치 한 마리는 슬픔”이라는 가사의 전래동요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정반대였다. 까치 한 마리는 너무나도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고, 한 인간을 위로하고 성장시켜주었다.
까치를 키우는 아름다운 자연 에세이이자 감동적인 성장기이기도 한 이 책의 미덕은 지극히 솔직한 기록이라는 점에도 있다. 저자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다. 이는 까치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에서도, 자신의 과거 이야기에서도, 죽음을 앞둔 생부를 만나고, 생부의 죽음 뒤 그의 삶을 되짚어가는 장면에서도 모두 그렇다. 미화하거나 과장하거나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종국에 우리 역시 저자만큼 한 뼘 성장했음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벤젠이 멀리 날아가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곁에 머무르기를 바랐다고 썼다. 우리네 삶의 많은 일이 다 이렇게 모순적이고 복잡할 테다.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인생을 배운다고도 할 수 있다. “요즈음 내가 집을 나설 때면 등 뒤를 돌아보는 일은 줄고 나무 위를 올려다보는 일은 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새와 인간의 변화를 목도한 우리 역시 이제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