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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 후집(문편)

고문진보: 후집(문편)

  • 황견(원저) ,박일봉(편저)
  • |
  • 육문사
  • |
  • 2015-11-15 출간
  • |
  • 672페이지
  • |
  • 154 X 225 mm /1108g
  • |
  • ISBN 978898203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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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보배로운 古文(옛글)만 모아 수록한 옛 선비들의 필독서!
가난한 자는 책으로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존귀해진다.
일언(一言)일구(一句)마다 담긴 뜻이 한없이 깊고 넓어 인생의
지표가 되는 정신적 지침서.

중국 역대 時文의 주옥같은 작품을 쉽게 즐길 수 있게 풀어놓은 책!
중국의 名詩 ㆍ 名文의 주옥같은 작품을 감상하거나 시대별 문체(文體)
변천 등을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고문진보(古文眞寶)》.

송나라 말기의 학자 황견(黃堅)이 편찬한 《古文眞寶》는 시문선집으로 전국시대부터 송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시문을 전집, 후집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전집은 〈권학문(勸學文)〉을 비롯하여 소박하고 고아한 고시를 주로 수록하였고, 후집은 산문인 17체의 명문을 실었다. 현존하는 《古文眞寶》는 전집(前集)과 후집(後集) 각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전집에는 오언고풍단편(五言古風短篇) ㆍ 오언고풍장편(五言古風長篇) ㆍ 칠언고풍단편(七言古風短篇) ㆍ 칠언고풍장편(七言古風長篇) ㆍ 장단구(長短句) ㆍ 가(歌) ㆍ 행(行) ㆍ 음(吟) ㆍ 인(引) ㆍ 곡(曲)의 10가지 체의 시, 모두 합해 217수가 실려 있으며, 후집에는 사(辭) ㆍ 부(賦) 등의 운문을 포함해서 설(說) ㆍ 해(解) ㆍ 서(序) ㆍ 기(記) ㆍ 잠(箴) ㆍ 명(銘) ㆍ 문(文) ㆍ 송(頌) ㆍ 전(傳) ㆍ 비(碑) ㆍ 변(辯) ㆍ 표(表) ㆍ 원(原) ㆍ 론(論) ㆍ 서(書)의 모두 17가지 체(體) 67편의 문장이 실려 있다.
《古文眞寶》 후집에는 주로 문장(文章)이 수록되어 있기는 하나, 그중에는 사(辭) ㆍ 부(賦) ㆍ 잠(箴) ㆍ 명(銘) ㆍ 송(頌) 등의 운문(韻文)도 섞여 있다. 문(文)류는 〈北山移文〉 ㆍ 〈弔古戰場文〉의 두 편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나 부(賦)처럼 운(韻)이 있는 文으로, 文이라 칭하기는 하나 산문(散文)이 아니라 일종의 운문(韻文)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文이라는 명칭을 운문과 산문 양쪽에 모두 사용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이들 운문식의 文 외에, 설(說) ㆍ 기(記) ㆍ 해(解) ㆍ 서(序) ㆍ 문(文) ㆍ 전(傳) ㆍ 비(碑) ㆍ 변(辯) ㆍ 표(表) ㆍ 원(原) ㆍ 론(論) ㆍ 서(書)의 12종류의 문(文)이 있는데, 이중에는 운문의 가(歌)를 동반한 것이 있기는 하나 모두 산문이다.
이 책은 작품과 작자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작품을 개괄적으로 자세히 다루고 원문에 나오는 고사(故事)나 인용된 문구와 그 출전(出典)의 내용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원문 밑에 한 字 한 字 음을 달아, 초학자라도 즐겁게 한시를 낭송하는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원문이 지닌 맛과 함축된 의미를 살려 우리말로 풀어놓았으며, 그 글이 쓰이게 된 배경이나 그 당시 작자의 심경이나 상황, 혹은 그 글과 관련 있는 이야기 등을 실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序文
《古文眞寶》의 전 ㆍ 후집에는 중국 역대 시문(詩文)의 명편(名篇)이 수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선비나 학자들은 중국의 詩文들을 단순한 외국 문학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학으로, 또는 학문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으로 배우고 익혀 왔다. 따라서 중국의 詩文이 우리나라의 문화 일반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古文眞寶》가 최초로 간행된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조금씩 의견을 달리하고 있지만, 그 의견을 종합해 보면 고려 시대에 처음으로 간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나라 선비 ㆍ 학자들 사이에서는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맏아들인 소명 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이 편찬했다는 《文選》이 문장 교본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古文眞寶》가 널리 읽히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후 조선조(朝鮮朝)에 이르러 《古文眞寶》의 진가(眞價)가 인정되고, 선진(先秦:秦의 시황제 이전의 시기 즉 춘추 전국시대)부터 송대(宋代)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다양한 문체(文體)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큰 장점 때문에 선비 ㆍ 학자들에 의해서 《古文眞寶》가 널리 애독(愛讀)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古文眞寶》후집에는 주로 문장(文章)이 수록되어 있기는 하나, 그중에는 사(辭) ㆍ 부(賦) ㆍ 잠(箴) ㆍ 명(銘) ㆍ 송(頌)’ 등의 운문(韻文)도 섞여 있다. 문(文)류는 〈北山移文〉 ㆍ 〈弔古戰場文〉의 두 편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넉 자와 여섯 자의 對句를 많이 쓰고, 音調를 맞추며 故事를 많이 인용하는 한문체)나 부(賦)처럼 운(韻)이 있는 文으로, 文이라 칭하기는 하나 산문(散文)이 아니라 일종의 운문(韻文)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文이라는 명칭을 운문과 산문 양쪽에 모두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이들 운문식의 文 외에, 설(說) ㆍ 기(記) ㆍ 해(解) ㆍ 서(序) ㆍ 문(文) ㆍ 전(傳) ㆍ 비(碑) ㆍ 변(辯) ㆍ 표(表) ㆍ 원(原) ㆍ 론(論) ㆍ 서(書)의 12종류의 문(文)이 있는데, 이중에는 운문의 가(歌)를 동반한 것이 있기는 하나 모두 산문이다. 그리고 사(辭) ㆍ 부(賦)가 심원(深遠)한 정회(情懷)를 읊은 서정적인 작품인 데에 비하여, 이들 각체(各體)의 산문은 어느 것이나 사회 생활면에서 무언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쓰인 작품이다. 기사문(記事文)이나 설명문, 혹은 전기문(傳記文) ㆍ 상주문(上奏文) ㆍ 비문(碑文) ㆍ 서간문(書簡文) 등, 문체의 이름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모두 실용문이다. 만약 실용문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치나 도덕의 훈계나 도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문장이다.
이러한 문장들은 대개 붓 가는 대로 한가롭게 쓰인 한문(閑文)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쓰인 것이다. 하긴 그중에는 〈蘭亭記〉 ㆍ 〈樂志論〉 ㆍ 〈酒德頌〉처럼 한가로이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이 책의 산문류는 실용문이며, 도(道)를 담은 문장이다. 道를 담은 문장이라 함은 자신의 뜻을 기술한 문장에 대해서 하는 말로, 유가(儒家)의 도덕 ㆍ 인의충효(仁義忠孝)의 道를 담고 있는 문장이란 뜻이다. 이 ‘문장은 도덕을 담기 위한 도구’라고 하는 예부터의 뿌리 깊은 관념이 중국의 문학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대(唐代) 한퇴지(韓退之)의 고문부흥운동(古文復興運動) 이래 성행한 고문(古文)도 이 유가적(儒家的)인 문학관(文學觀)을 계승한 것이었다. 실제로 《古文眞寶》에 실린 글 중에서 한가로이 자신의 뜻을 이야기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왕일소(王逸少)의 〈蘭亭記〉, 중장통(仲長統)의〈樂志論〉, 유백륜(劉伯倫)의 〈酒德頌〉및 도연명(陶淵明)의 〈五柳先生傳〉 등 당(唐) 이전 사람들의 작품에 많다.
이 글들이 대부분 실용적인 글이거나 道를 이야기하기 위한 글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각 편(篇)이 모두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한 편을 취해 보아도, 어떤 의미에서든지 독자에게 감명을 주지 않는 글이 없다. 다시 말해 모두 작자의 개성이 강하게 엿보이는 글들로서, 그것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작자의 정신이나 문자의 표현 방법 등 여러 가지 감흥을 글 속의 도처에서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이 한 권의 책은 주옥같은 고문의 소품(小品)으로 넘쳐 있는 것이다. 편자(編者)가 이 책을 진보(眞寶:참된 보배)라 이름 지은 연유도 이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중국의 수필가 주작인(周作人)은,
“당송(唐宋)의 문인도 얼마간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는 산문을 짓기는 했지만, 대개는 스스로 그것을 문장의 유희(遊戱)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본격적인 문장을 지을 때에는 언제나 형식에 맞는 고문(古文)을 썼다.”
고 말하여, 형식에 맞추어 道를 이야기하는 문장이 아닌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는 산문은, 명(明) ㆍ 청(淸) 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조금씩 쓰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당(唐) ㆍ 송(宋)의 古文은 아직 형식에 맞추어 道를 이야기하는 문장으로, 완전히 형식을 타파한 자유롭고 서정적인 산문 소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古文의 산문은 이미 육조풍(六朝風)의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산문 정신을 획득하고 있으며, 고풍(古風)스런 형식 사이사이에서 개성미가 반짝거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唐)의 고문운동(古文運動)의 성과는 이미 자유로운 산문에로 제1보를 내딛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唐代의 古文運動은 일종의 문학 혁명이었으며, 古文은 이 문학 해방에 의해서 생겨난 새로운 생명을 가진 문체(文體)였다고 할 수 있다. 주씨(周氏)가 이야기하는 서정적인 산문 소품은 唐代에서는 아직 문장 유희(遊戱)로 인식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 古文은 상당히 성행되었다. 그 古文의 산문은 전기소설(傳奇小說)의 가장 적합한 도구로 사용되어, 많은 재미있는 작품을 낳았다. 이것이 唐代의 古文이 이룩한 큰 업적이었음은 문학사가(文學史家)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 근대의 산문 소품의 원류(源流)를 唐 ㆍ 宋 古文의 산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중국의 산문(散文)은 일찍이 唐 ㆍ 宋 古文의 소논문(小論文) 중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도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古文의 산문은 결코 경서(經書)의 주소(註疏)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생한 작자의 개성을 통해 독자에게 이야기되는 예술 작품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우리는 그 작품들의 성실하고 근엄한 정신에 감동하고, 그 익살스러움과 초탈한 경지에 이끌리며, 비통하고 슬픈 감정에 빠져드는가 하면, 논리 정연한 논술이나 교묘한 비유에 강한 설득력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두 그 작품의 우수성에 기인한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을 옛사람이 보여 준 문장의 전형으로 배울 뿐만 아니라 그 작자의 개성적인 작품으로서 감상한다면, 그 문장에서 새로운 흥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醉翁亭記〉는 산수(山水)의 아름다움에 취한 태수(太守) 구양수(歐陽修)의 유연(悠然)한 심경의 여유가 그 문장 표현을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하면서, 마지막으로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한다는 위정자(爲政者)의 마음가짐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岳陽樓記〉는 동정호(洞庭湖)의 웅대한 경관(景觀)이 그 경관을 대하는 사람의 기쁨이나 슬픔에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찬탄(讚嘆)한 다음, 일전(一轉)하여 이 개인적인 근심이나 즐거움을 초월하여 민(民)에 앞서 근심하고 민(民)보다 늦게 즐기는 군자의 의식(意識)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써 이야기를 끝내고 있다. 두 글 모두 감흥(感興)을 충분히 살리면서 마지막에 도덕과 정치에 관련시켜 이야기를 맺고 있는 것은, 작자가 단지 문인(文人)일 뿐만 아니라 관리이며 정치가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記 ㆍ 序류의 모든 편(篇)에 관해서는 대개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前後出師表〉와 〈陳情表〉에서는, 고대인(古代人)의 신하 된 자의 절실한 정(情)과 충의효자(忠義孝慈)의 강한 도덕심에 감동되는 동시에, 그것이 작자의 절박한 현실의 입장이며 또 그런 생활 속에서 생겨난 글이므로, 거기에는 유희적(遊戱的)인 감흥이 조금도 끼어들 여지가 없음을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생활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또 이와는 반대로, 귀족 풍류인들이 한가롭게 시주(詩酒)와 산수(山水)를 즐기면서 세월의 흐름을 애석해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영탄(詠嘆)하며 인간의 영원한 근심을 써서 남긴〈蘭亭記〉가 있으며, 후세에 이와 같은 사상을 계승한 것으로는, 사적지(史蹟地)로 귀양 가 그곳에서 풍류 넘치는 뱃놀이를 하면서 낭만적인 인생관을 노래한 〈赤壁賦〉가 있다. 〈待漏院記〉에서, 정무(政務)에 힘쓰는 재상의 엄격한 마음가짐을 느낀 사람은, 〈歸去來辭〉에서, 벼슬에서 떠나 고향에 안주하려고 돌아가는 시인의 한없는 기쁨에 공감할 것이다. 이와 같이 각 편(篇)에 갖가지 흥취가 있어서, 이것을 읽는 사람의 이해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흥미는 한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名詩文의 묘미를 우리말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되도록 원문(原文)이 지난 맛을 우리말에도 살려 보고자 온갖 힘을 기울였지만, 아무래도 原文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고문진보 해제(古文眞寶 解題)
이 책을 고문진보(古文眞寶)라 이름 한 것은, ‘古文 중에서도 참으로 보배로운 것’만을 모아 수록했다는 의미에서다. 《古文眞寶》의 전집(前集)에는 시(詩)가, 후집(後集)에는 문(文)이 수록되어 있다. 古文이란 시의 경우에 古詩 또는 古風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며, 문장의 경우는 한(漢) 이전의 고아(古雅)한 문체의 문장을 말한다.
진(晋) 이후 육조(六朝) 시대에는, 시의 표현 방법 면에서 매우 교묘해졌지만, 그 사상이 빈약하고 정신은 퇴폐해졌다. 그리하여 당대(唐代)에 이르러 많은 시인들이 《詩經》의 문학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진자앙(陳子昻)의 〈感遇詩〉38수, 이백(李白)의 〈古風〉59수는 이러한 사상의 발현(發現)이었다. 고풍(古風)의 문학 정신은 근체시(近體詩)의 새로운 형식과 함께 당시 전성(唐詩全盛)의 원동력이 되었다.
《古文眞寶》의 전집(前集)에는 주로 이 소박하고 건전한 고시(古詩)와 후세의 많은 시 중에서 내용과 정신이 고아(古雅)한 것을 모아 수록한 것이다.
문장에서도 중당(中唐:詩文體의 변천에 따라 중국 唐代를 初唐 ㆍ 盛唐 ㆍ 中唐 ㆍ 晩唐의 네 시기로 구분한 셋째 시기)의 한유(韓愈) ㆍ 유종원(柳宗元) 등이 古文으로 복귀(復歸)를 주장하고 나섰다. 詩와 마찬가지로 육조(六朝)의 文은, 넉 字 여섯 字의 대구(對句)에 음성(音聲)의 해조(諧調) ㆍ 어구(語句)의 화려를 다투는 율문(律文) 같은 산문, 이른바 ‘사륙 변려체(四六騈儷體)’였다. 한유(韓愈) ㆍ 유종원(柳宗元) 등이 이런 연약한 문장을 배척하고 선진(先秦) 시대 《孟子》의 문장 같은 힘차고 자유로운 문장을 쓰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 고문체(古文體)의 문장은 송(宋)의 구양수(歐陽修) ㆍ 소순(蘇洵) ㆍ 소식(蘇軾) ㆍ 소철(蘇轍) ㆍ 왕안석(王安石) ㆍ 증공(會鞏)의 육가(六家:韓 ㆍ 柳와 함께 古文의 唐宋八大家라 칭한다)의 배출에 의해 세상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 《古文眞寶》 후집에는 古文이라 일컬어지는 주(周) ㆍ 한(漢) 이래의 각종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四六文도 섞여 있지만 역시 이 당(唐) ㆍ 송(宋)의 古文이 그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古文眞寶》는 이제까지 이야기한 것과 같은 古風 ㆍ 古文을 존중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시대에, 古文 학습을 위해 편집된 것이다.
지정(至正:元 順宗의 연호) 26년(2년 후에는 明 太祖의 洪武 元年이 된다)에 쓰인 정본(鄭本, 字는 士文)의 서(序)에 의하면, 《古文眞寶》는 당시에 이미 오래 전부터 세상에 나와 있었으며, 정본(鄭本)이 序를 쓴 것보다 조금 앞서 임이정(林以正, 이름은 楨)에 의해서 교정(校訂)되고 주석(註釋)이 정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이정(林以正)은 복주(福州) 삼산(三山) 사람으로, 《詩學大成》 30권의 저자이다. 명(明)의 홍치(弘治) 15년에 쓰인 청려재(靑藜齋)의 ‘중간고문진보발(重刊古文眞寶跋)’에 의하면, 이 책은 영양(永陽)에 사는 황견(黃堅)이라는 사람이 편집했다고 한다. 황견의 생애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 책의 전집(前集)에 사첩산(謝疊山, 이름은 枋得, 1289년에 죽음)의 〈菖蒲歌〉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송(宋) 말년의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긴 현존(現存)하는 책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개편(改編)된 듯하니, 원편자(原編者)보다도 후세 사람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고는 확언할 수가 없다.
현존하는 《古文眞寶》는 전집(前集)과 후집(後集) 각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전집은 詩, 후집은 文을 모은 것이다. 전집의 권두(卷頭)에 〈勸學文〉을 놓은 것은, 《論語》와 《荀子》에 각각 學而篇과 勸學篇을 두어 학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본뜬 것이라 생각된다. 그 제명(題名)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勸學文〉은 시(詩)가 아니고 운(韻)이 있는 文, 혹은 산문에 가까운 시이다. 이밖에 전집에는 오언고풍단편(五言古風短篇) ㆍ 오언고풍장편(五言古風長篇) ㆍ 칠언고풍단편(七言古風短篇) ㆍ 칠언고풍장편(七言古風長篇) ㆍ 장단구(長短句) ㆍ 가(歌) ㆍ 행(行) ㆍ음(吟) ㆍ 인(引) ㆍ 곡(曲)의 10가지 체(體)의 시, 모두 합해 217수가 실려 있으며, 후집에는 사(辭) ㆍ 부(賦) 등의 운문을 포함해서 설(說) ㆍ 해(解) ㆍ 서(序) ㆍ 기(記) ㆍ 잠(箴) ㆍ 명(銘) ㆍ 문(文) ㆍ 송(頌) ㆍ 전(傳) ㆍ 비(碑) ㆍ 변(辯) ? 표(表) ㆍ 원(原) ㆍ 론(論) ㆍ 서(書)의 모두 17가지 체(體) 67편의 문장이 실려 있다. 홍치본(弘治本)의 청려재(靑藜齋)의 발(跋)에는 二十有七體三百十有二篇이라 하고 그 주(註)에, ‘전집 245편, 후집 67편으로, 홍치본의 전집은 괴본(魁本:初版本)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편집 체재도 책마다 약간씩 다른 듯하다. 역시 황견(黃堅)이 편집한 책으로서 장천계(張天啓)가 주석(註釋)한 책이 있는데, 이 책은 부(賦)를 모두 후집의 맨 앞에 싣고, 〈出師表〉 ㆍ 〈陳情表〉두 표(表)를 후집의 맨 뒤에 실었으며, 주석도 약간 다른 것이 있다. 이밖에 조선간본(朝鮮刊本)으로 송백정(宋伯貞)이 음(音)을 달고 주석한 것을 유염(劉剡)이 교정한 《詳說古文眞寶大全》이 있는데, 이것은 전집이 12권으로 되어 있다. 또 명(明)의 엽향고(葉向高)가 주석한 《古文大全》은 전 ㆍ 후집 각 10권이고, 《評林註釋古文大全》은 후집이 11권이며, 청(淸)의 장서도(張瑞圖)가 주석하고 교정한 《新臺閣校正註釋補遺古文大全》은 전 ㆍ 후집을 합쳐 8권밖에 되지 않지만 내용은 20권에 담긴 것보다 많다. 이와 같이 권수도 내용도 여러 가지인 《古文眞寶》가 있으며, 책 이름을 달리 《古文大全》이라 한 것도 있어 문헌(文獻)으로서는 불확실하고, 작품 채록(採錄)과 편집 과정에서도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작품은 주말(周末)의 7국(七國) ㆍ 전국시대(戰國時代) ㆍ 진(秦) ㆍ 한(漢) ㆍ 위(魏) ㆍ 육조(六朝) ㆍ 당(唐) 및 송(宋)의 역대 시문(詩文)의 명편(名篇)으로, 그야말로 古文 중의 참된 보배만을 모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방득(謝枋得)의 《文章軌範》에 실려 있는 작품은 〈歸去來辭〉와 〈出師表〉두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당(唐) ㆍ 송(宋)대의 작품이고, 《唐詩選》에 실려 있는 작품은 당대(唐代)의 것에 한정되어 있음에 비하여, 《古文眞寶》는 각 시대의 갖가지 체(體)의 시문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목차


역자 서문
고문진보 해제(古文眞寶 解題)
일러두기

고문진보서(古文眞寶敍)
중간 고문진보 발(重刊古文眞寶跋)

고문진보 후집 권지 1(古文眞寶 後集 卷之一)

사류(辭類)
추풍사:한무제(秋風辭:漢武帝)
어부사:굴평(漁父辭:屈平)
귀거래사:도연명(歸去來辭:陶淵明)

부류(賦類)
조굴원부:가의(弔屈原賦:賈誼)
아방궁부:두목지(阿房宮賦:杜牧之)
추성부:구양영숙(秋聲賦:歐陽永叔)
적벽부:소자첨(赤壁賦:蘇子瞻)
후적벽부:소자첨(後赤壁賦:蘇子瞻)
증창승부:구양영숙(憎蒼蠅賦:歐陽永叔)

고문진보 후집 권지 2(古文眞寶 後集 卷之二)

설류(說類)
사설:한퇴지(師說:韓退之)
잡설:한퇴지(雜說:韓退之)
명이자설:소로천(名二子說:蘇老泉)
가설:소자첨(稼說:蘇子瞻)
애련설:주무숙(愛蓮說:周茂叔)

해류(解類)
획린해:한퇴지(獲麟解:韓退之)
진학해:한퇴지(進學解:韓退之)

고문진보 후집 권지 3(古文眞寶 後集 卷之三)

서류(序類)
춘야연도리원서:이태백(春夜宴桃李園序:李太白)
집창려문서:이한(集昌黎文序:李漢)
송맹동야서:한퇴지(送孟東野序:韓退之)
송이원귀반곡서:한퇴지(送李愿歸盤谷序:韓退之)
송설존의서:유자후(送薛存義序:柳子厚)
등왕각서:왕발(?王閣序:王勃)

고문진보 후집 권지 4(古文眞寶 後集 卷之四)

기류(記類)
난정기:왕일소(蘭亭記:王逸少)
독락원기:사마군실(獨樂園記:司馬君實)
취옹정기:구양영숙(醉翁亭記:歐陽永叔)
주금당기:구양영숙(晝錦堂記:歐陽永叔)
희우정기:소자첨(喜雨亭記:蘇子瞻)
악양루기:범희문(岳陽樓記:范希文)
엄선생사당기:범희문(嚴先生祠堂記:范希文)
황주죽루기:왕원지(黃州竹樓記:王元之)
대루원기:왕원지(待漏院記:王元之)
간원제명기:사마군실(諫院題名記:司馬君實)
원주주학기:이태백(袁州州學記:李泰伯)
사정기:진사도(思亭記:陳師道)

고문진보 후집 권지 5(古文眞寶 後集 卷之五)

잠류(箴類)
대보잠:장온고(大寶箴:張蘊古)
시잠:정정숙(視箴:程正叔)
청잠:정정숙(聽箴:程正叔)
언잠:정정숙(言箴:程正叔)
동잠:정정숙(動箴:程正叔)

명류(銘類)
누실명:유우석(陋室銘:劉禹錫)
극기명:여여숙(克己銘:呂與叔)
서명:장자후(西銘:張子厚)
동명:장자후(東銘:張子厚)
고연명:당자서(古硯銘:唐子西)

문류(文類)
북산이문:공덕장(北山移文:孔德璋)
조고전장문:이화(弔古戰場文:李華)

고문진보 후집 권지 6(古文眞寶 後集 卷之六)

송류(頌類)
성주득현신송:왕자연(聖主得賢臣頌:王子淵)
대당중흥송:원차산(大唐中興訟:元次山)
주덕송:류백륜(酒德頌:劉伯倫)

전류(傳類)
오류선생전:도연명(五柳先生傳:陶淵明)
종수곽탁타전:유자후(種樹郭?駝傳:柳子厚)
독맹상군전:왕형공(讀孟嘗君傳:王荊公)

고문진보 후집 권지 7(古文眞寶 後集 卷之七)

비류(碑類)
조주한문공묘비:소자첨(潮州韓文公廟碑:蘇子瞻)

변류(辯類)
동엽봉제변:유자후(桐葉封弟辯:柳子厚)
휘변:한퇴지(諱辯:韓退之)

고문진보 후집 권지 8(古文眞寶 後集 卷之八)

표류(表類)
출사표:제갈공명(出師表:諸葛孔明)
후출사표:제갈공명(後出師表:諸葛孔明)
진정표:이령백(陳情表:李令伯)

고문진보 후집 권지 9(古文眞寶 後集 卷之九)

원류(原類)
원인:한퇴지(原人:韓退之)
원도:한퇴지(原道:韓退之)

론류(論類)
낙지론:중장통(樂志論:仲長統)
과진론:가의(過秦論:賈誼)

고문진보 후집 권지 10(古文眞寶 後集 卷之十)

서류(書類)
상장복야서:한퇴지(上張僕射書:韓退之)
위인구천서:한퇴지(爲人求薦書:韓退之)
답진상서:한퇴지(答陳商書:韓退之)
여한형주서:이태백(與韓荊州書:李太白)
답장적서:한퇴지(答張籍書:韓退之)

부록
작자 소전(作者 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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