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통찰력, 섬세하고 부드러운 기교
개성 넘치는 묘사와 시적인 문장으로 그즈음 영국 문단에 돌풍을 일으킨 맨스필드- 그녀는 단편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그녀의 주옥같은 섬세한 단편소설들이 지닌 완곡한 서술과 날카로운 통찰력은 안톤 체호프의 영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맨스필드는 그녀 자신만의 전범과 표본을 갖고 있었다. 강한 감수성에 알맞은 역설의 힘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으나, 체호프처럼 인간 생활의 극적인 면보다는 흔한 일 가운데에서 충분한 의의를 인정해 인간 심리의 미묘한 움직임과 그에 응하는 인간 행동의 기묘함을 꿰뚫어 봄으로써 이를 포착해 선명하고 유창하게, 또한 교묘한 비유로써 표현했다. 맨스필드는 인생의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일컬은 것이 삶의 가장 단편적인 부분이며 참다운 진리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맨스필드는 아주 사소한 사건이나 보잘것없는 인물을 다뤘다. 그만큼 그녀의 감각은 비상했고 민감했으며 날카로웠다. 그러한 맨스필드의 작품에는, 인간의 행복과 슬픔의 포착하기 어려운 이류(異流)를 찾아내기 위하여 인생의 외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미묘한 기교가 풍부하게 넘쳐난다.
단편소설의 형식을 철저히 지키다
맨스필드는 영국 소설가로는 드물게, 끝까지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을 철저하게 지켜나갔다. 다른 작가였다면 30쪽이 넘었을 내용을 그녀는 단 10쪽에 담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딱딱한 문장으로 어지러운 사건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든파티〉를 보면, 이것은 아무 기복도 없는 평범한 사건이다. 그러나 거기에 갑자기 한 인간의 죽음이 그림자처럼 나타난다. 그 그림자는 결코 충격적이지 않다. 평범한 쉬운 문장 사이를 누비며 퍼뜩 스쳐지나갈 따름이다. 쉬운 문장이라고 했는데,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참뜻을 알려면 무척 어렵다. 대상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략과 암시와 비유로써 은근하게 독자에게 접근한다. 그러므로 그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의 맛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 맨스필드 단편의 참맛이 깃들어 있다.
평범한 일상 속 잔잔한 행복과 슬픔, 깊은 여운
맨스필드의 작품에는 아주 흥미진진한 줄거리라든가 구성상의 빼어난 기교라든가, 개운하고 멋진 결말도 없으며 대담한 인간 본연의 행동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색채의 뚜렷한 묘사도 없다. 그러나 이에 비해 인간의 행복과 슬픔의 포착하기 어려운 또 다른 흐름을 찾아내기 위하여 인생의 외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섬세하고도 부드러우며, 미묘한 기교가 모든 작품에 풍부하게 넘쳐난다. 그녀의 일기와 편지 가운데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감상과 비평이 군데군데 적혀 있는데, 그중 1922년 10월 6일 〈차 한 잔〉을 쓴 뒤의 감상을 남편 머리에게 다음과 같이 적어 보내고 있다. ‘비 오는 날, 일어나는 일이란 왜 그토록 신비스러운지 모르겠어요. 당신도 그렇게 느끼나요? 매우 신선한 것 같고 전혀 예기치 않았던, 그러나 기억에 생생한 일인 것만 같군요. 나는 그것을 몇 시간이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어요…….’
20세기 단편문학의 정수! 〈가든파티〉
〈가든파티〉는 맨스필드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잘 정리된 구성을 보여준다. 소녀 로라의 심리의 그림자를 부각시켜 호화로운 가든파티와 가난한 한 남자의 죽음을 교묘한 구도로 대조시킨다. 이 작품은 아무런 기복도 없는 평범한 사건을 다루지만 거기에 갑자기 한 인간의 죽음이 그림자처럼 나타난다. 그 그림자는 결코 큰 충격을 주지는 않는다. 평범하고 쉬운 문장 사이를 누비며 퍼뜩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죽음이라는 문제를 비통한 얼굴을 하고 정면으로 논하며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다〉에 나오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단조 악장처럼 ‘북소리의 길고 무거운 떤꾸밈음’ 같은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의 밝은 장조음을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인생의 서글픔을 느끼는 그런 것이다. 가든파티에서의 화려한 모자를 그대로 쓰고 온 것을 탓하고 마부의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는 어두운 저녁 골목길, “인생이란 그런 거야.”4라고 오빠 로리가 건넨 이 한마디는 우리에게 커다란 암시로 인생을 설명해 준다.
섬세한 관찰과 개성 넘치는 표현
〈바람이 불다〉에서의 환상곡, 〈차 한 잔〉에서 얻는 것보다 푸른 빛 조그만 상자가 갖고 싶은, 아니 남편의 사랑을 바라던 그녀, 거기에서 차 한 잔에 따라 왔던 소녀의 아름다움은 그녀의 이 바람으로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또 하나의 자기 조화를 이뤄 나감으로써 부를 수 있는 〈지극한 행복〉이란……. 또 〈인형의 집〉에서의 램프, “난 조그만 램프를 봤어.”라고 말하는 어린 소녀의 기쁨은 모든 학교 친구들의 따돌림으로부터 소녀를 구해 주는 유일한 불빛이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레지널드 피콕 씨의 하루〉는 자다 깬 부인 앞에서 “친애하는 부인, 더없이 기뻤을 따름이오-더없이 기뻤다오”라는 되풀이로 끝난다. 이처럼 체호프와 일맥상통하는 맨스필드의 여운 있고 새로우며 인상적인 문체는 그녀의 모든 작품을 통해 생생히 넘쳐나고 있다.
한편의 산문시를 읽는 듯한 풍부한 시정!
〈만에서〉는 맨스필드의 모든 작품들 중 가장 긴 것이자 대표작이기도 하다. 무대인 어느 바닷가는 맨스필드가 소녀 시절에 여름을 보낸 적 있는 웰링턴 교외의 해수욕장으로, 그곳의 새벽부터 밤까지의 모습을 열두 장으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는데, 그저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인물과 배경에서 훌륭한 통일감을 느낄 수 있다. 작중인물 중 케지아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임이 분명하지만, 다른 등장인물도 거의 실재 인물을 전범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의 압권은 아이들을 묘사한 장면이다. 그리고 맨스필드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개성 있는 표현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모든 단편에 흐르는 풍부한 시정이다. 이는 바닷가 연안의 아침, 점심, 밤을 그린 연작 소묘인 동시에 12부로 이루어진 한 편의 산문시라 해도 좋으리라.
맨스필드의 창작은 겨우 다섯 권의 단편집에 모두 실려 있으며, 그 수는 88편이다(열다섯 편은 미완성). 이 책에는 그녀의 모든 작품 중 〈가든파티〉, 〈지극한 행복〉, 〈인형의 집〉, 〈차 한 잔〉, 〈만에서〉 등 비교적 널리 알려지고 많이 읽히는 작품 위주로 골라 실어 맨스필드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