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실격’될 수 있는가
스물일곱, 삶이 멈춰버린 한 젊은 사회 부적응자의 일대기
이 책 『인간 실격』은 ‘서문’ ‘첫번째 수기’ ‘두번째 수기’ ‘세번째 수기(1·2)’ ‘후기’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과 ‘후기’에 소설가로 추정되는 ‘나’가 등장하고, ‘나’가 빌린 노트 세 권의 주인이 쓴 ‘수기’가 중간에 삽입되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한다. 작품의 주인공 ‘요조’라는 캐릭터를 살펴보면, 우선 오바 요조라는 이름은 다자이의 첫 창작집 『만년晩年』에 실린 단편 「어릿광대의 꽃」(1935)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과 동일하다. 이 단편에는 작가가 좌익 운동을 하다가 한 여성과 투신자살을 기도한 뒤, 혼자 살아남은 죄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이 생활이라는 게, 짐작이 안 됩니다.”(11쪽)
인간과 인간 생활에 대한 공포와 불안.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한 속임수로서의 익살이 폭로당하고 나서 더욱 깊어진 인간 불신. 이렇듯 『인간 실격』은 다름 아닌 너와 나, 우리 ‘인간’을 다루고 이야기한다. 주인공 요조를 통해 인간의 추한 민낯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고발당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독자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청춘이, 삶이 멈춰버린 한 젊은이의 일대기와 마주한다. 요조는 전혀 악인이 아니다. 사기꾼도 아니며, 사회에 심각하게 해를 입히는 범죄자도 아니다. 그는 요시코와 “결혼해 봄이 되면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신록 가득한 폭포를 보러”(113쪽) 가는 소박한 꿈을 지닌 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안타까운 꿈.
현실 세계에 내재하는 선과 악, 미와 추, 그 양면성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그와 세상 간의 소통은 가로막혀 있다. 소통의 부재와 단절. 이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온갖 갈등의 근본 요인이다. 따라서 주인공 요조가 그러안은 문제는, 개인의 고립이 갈수록 심화하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 직면한 시대적 과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 인간으로서 인간 세상, 일상을 영위하는 삶 속에 녹아들지 못한 채 외톨이가 되어버린 한 아웃사이더의 절규. 이 책이 오래도록 독자들에게 공감과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아닐까.
원문 표현에 충실하고, 작가가 구사한 어휘를 그대로 살리는
전문번역가 유숙자의 유려한 번역
현재까지 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추정되며, 민음사, 열린책들, 문예출판사 등 국내 열 곳 이상의 유수한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그동안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만년』 『달려라 메로스』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는 유숙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판 『인간 실격』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가능한 한 원문 표현을 그대로 살려 옮기고자 애썼으며, 더러 본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듯 보이는 부분 또한 작가의 의중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 하여 소중히 지켰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문장에는 작가의 마음이 배어 있으므로. “그는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했다!”(『정의와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