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덕이, 극락 가는 반야용선을 탔네
안성 청룡사 대웅전 〈반야용선도〉는 그 자체로도 잘 그린 그림 소리를 듣긴 하지만 이 그림을 더욱 빛나게 하는 특별함이 숨어 있다.
아미타불이 왕생자들과 함께 극락으로 갈 때 타는 배가 있는데, 바로 반야용선이다. 극락으로 향하는 탑승자 면면은 승속은 물론 남녀, 계층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탑승자 묘사에는 대개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안성 청룡사의 〈반야용선도〉에는 특이하게 남사당패가 타고 있다. 조선 후기 스님이 써준 부적을 팔아 사찰 불사에 보태던 이들이었던 남사당패의 근거지 중 한 곳이 바로 안성 청룡사였기 때문이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구성된 그림 속 남사당패 중에는 소고(小鼓)와 요령 같은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이들 남사당패가 모여 있는 뱃머리 선두 부분에 갖은 치장을 한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반야용선도〉 형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대목이다. 대개의 그 자리는 부처님이나 보살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여성은 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는데 그 막대기 끝은 십자 모양으로 농경 사회의 의례용구인 ‘살포’ 이미지를 떠올린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고 바로 ‘대장’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 여성을 남사당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여성 꼭두쇠로 알려진 바우덕이로 추정한다. 안성 청룡사에서 스님들 손에 의해 키워져 남사당패 꼭두쇠가 된 바우덕이가 남사당패의 선두에 선 것이다. 물론 ‘추정’이긴 하지만 앞뒤를 이해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보태지면서 안성 청룡사 〈반야용선도〉는 ‘잘 그린 그림’에서 ‘뜻 깊은 그림’이 되었고 시절이 지나며 가히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반열에 올랐다.
힘센 아라한, 발우에 왕생자 담아 극락으로 치켜올리다
안성 청룡사 〈반야용선도〉가 역사와 이야기로 탄생한 명작이라면 기발한 발상으로 탄생한 명작도 있다.
청도 대적사 극락전 벽화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이한 발상의 그림이 있다. 힘센 장사 품세의 사람이 발우에 사람을 담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뭔가 대담하고 극적인 장면 같지만 그냥 봐서는 이해할 수 없다. 감상 요령은 시야를 벽면 전체로 확장하는 거다. 그림 위쪽에는 천의를 드리운 비천이 있고, 대들보엔 길상화를 입혔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가면 좌측을 보면 된다.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자리잡고 있다. 극락으로 인도하는 두 보살이다. 극락이 위에 있고 옆에서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인도한다. 힘센 장사가 발우에 담아 치켜 올린 건 바로 그들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대개 극락으로 가는 방법은 연화화생, 즉 연꽃에서 피어나 극락에 환생하거나 아니면 〈반야용선도〉에서 보듯이 아미타불이 이끄는 반야용선을 타고 간다. 이렇게 단숨에 치켜올려 극락에 보내는 그림은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에도 없다. 물론 아예 근거 없는 ‘소설’만은 아니다. 힘센 장사의 실체는 16아라한 중 ‘빈 발우’가 지물인 제2 아라한 가락가벌차다. 화공은 가락가벌차를 통해 남녀를 태워 극락으로 보내는 ‘파격’을 선택했다. 마침내 규칙을 벗어나 명작으로 탄생한 것이다.
나무 한 그루도 명작이 되었네
이 책에는 이렇게 역사 이야기를 담아서, 재기발랄함을 담아서 탄생한 작품들을 ‘명작’으로 제시하고 있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 닫집’, ‘예천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 ‘영주 성혈사 나한전 꽃살문’처럼 비교적 익숙한 작품들도 있다. 안동 봉정사 지조암 칠성전 벽화나 양산 신흥사 대광전의 어람관음 등은 거개의 사람들에게는 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 오래 보는 수고와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혜안이 있다면 석굴암이나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못지않은 ‘명작’임을 알아낼 수 있다. 하늘의 별이 ‘여래’가 된 사연이나 관세음보살이 고기가 든 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는 벽화 등은 발상 자체만으로도 ‘명작’으로 읽혀야 하리라.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간다. 역사나 재가발랄함에 더해 ‘자연’까지 담아 ‘명작’으로 제시한다. 구례 화엄사의 구층암 요사채의 기둥은 모과나무다. 휘어진 소나무 같은 걸 기둥으로 쓴 경우는 있지만 곧게, 크게 자라지 않는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썼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자연 속 절집에 또 하나의 자연이 들어온 셈이다. 저자는 이 모과나무를 두고 ‘자연주의 미학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다른 나무도 한 그루 절집에 들어왔다. 같은 소나무지만 특별한 대접을 받는 소나무, 바로 운문사 처진 소나무다. 처진 소나무가 흔하진 않지만 그걸 ‘명작’으로 만든 건 ‘사람’이다. 절집 한가운데 자리잡은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일 년에 열두 말씩 스님들에게 막걸리 공양을 받는다. 벌써 40년이나 된 이야기다. 거기에 역사가 담긴 것은 물론 사람까지 담아 있으니 그야 말로 명작의 탄생이다.
20년 우리 것을 담아온 사진작가 노재학이 선택한 명작 23선
저자 노재학은 20여 년 넘게 전통문양과 향교, 사찰 등 우리 것을 렌즈에 담는 사진작가다. 스스로 1년에 300일은 ‘바깥에서 산다’고 할 정도다. 그가 수많은 사찰을 답사하고 그 풍경을 렌즈에 담으면서 ‘명작’이라고 생각한 스물세 곳을 글로 풀어냈다. 그 글 속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기쁨과 슬픔, 불교의 이상과 신도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