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유럽 이야기
슬로베니아의 가우디를 아시나요?
진지한 도시 탐구서인 이 책에는 낯선 일곱 도시와 그 도시에 혼신의 힘을 쏟은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밑줄 치며 곱씹어볼 수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건 ‘슬로베니아의 가우디’로 불리는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류블랴나 곳곳에 새긴 건축은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큰 울림을 준다.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활동한 플레츠니크는 류블랴나를 전쟁으로 고통받은 슬로베니아인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자 ‘지중해의 신전’으로 만들고자 했다. 도시의 중심 광장인 프레셰렌 재정비와 삼중교 프로젝트에서는 그의 소망이 빛난다. 슬로베니아 국립 대학 도서관 프로젝트는 또 어떤가? 대지진으로 파괴된 건축물의 잔해를 활용하여, 외관에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돌들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도시재생’과 ‘도서관 설립’이라는 서로 다른 개념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플레츠니크만의 특출난 디자인으로 창조해냈다.
그를 ‘슬로베니아의 가우디’라 부르는 까닭은 자신의 이상향을 담은 몇몇 건축물을 구상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플레츠니크는 류블랴나의 앞날을 미리 그려본 도시의 설계자다. 구도심 언덕 위를 지키고 있는 류블랴나성을 아크로폴리스로 삼고 성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강, 다리, 광장, 운하 등을 배치한, 수십 년 전 완성된 그의 도시계획안. 당대에는 말 그대로 혁신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2004년부터 하나씩 적용되기 시작했다. 플레츠니크의 안목 덕분인지, 마침내 2016년, 류블랴나는 ‘유럽 녹색 수도’로 선정되었다. 류블랴나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건축가 한 사람의 의지는 도시 전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류블랴나처럼.”
그단스크가 알려준, 옛것을 바라보는 법
그단스크는 지금도 재건 작업이 한창이다. 모트와바강 맞은편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은 여전히 재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1185년부터 존재해 온 성 캐서린 성당은 여전히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어떤 벽은 훼손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화재로 약해진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던 자리는 벽돌로 메웠다. 성당의 보존 방식은 고문헌과 그림을 뒤져가며 완벽하게 예전 모습으로 되돌리려 했던 구도심 복원 프로젝트와는 큰 차이가 난다. 원래 모습을 재현하기보다 최대한 남은 구조를 활용해 공간을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옛 영광에만 집착하여 모든 것을 재창조하고 복원했다면, 건축은 오히려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와 시민들은 그단스크를 톺아봤고 과거 서사를 온전하게 살려 현재를 만들고 있다.
그단스크의 이야기는 생생히 일러 준다.
“역사가 담긴 도시를 진중하게 대하며 성급하게 복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