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한 출판사 서평은 『고은과의 대화』의 대담자이자 저자인 라민 자한베글루의 ‘시인의 춤’이란 글과 저자의 친구인 아쇼크 바즈페이(Ashok Vajpeyi)의 ‘권두사’로 대신한다. 외국인인 그들의 글을 통해 어떻게 우리 한국인보다 더 고은과 그의 시에 대해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갖고 있는 지 놀라울 뿐이다. 총론격인 권두사와 ‘시인의 춤’도 놀랍지만, 본문의 질문 하나하나는 시인 고은과 그 시를 속속들이 알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독자분들은 총론이자 서문인 이 두 분의 글을 읽어보고 본격적인 문답인 본문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고은은 많은 점에서 놀라운 시인이다. 그의 시의 현장은 틀림없이 한국이지만 그의 탐험과 통찰에는 보편성이 있다. 고집스러운 지역성은 힘들이지 않고 지구적(地球的)인 것이 된다. 그의 시의 범주는 놀라울 정도로 폭이 넓다-삶, 인간의 역경, 유혹과 불안, 자연, 도덕성, 명상과 혁신, 전통의 메아리, 민중, 사건들, 일상의 이미지, 일상성, 이름들, 상징들, 비유들, 기억, 등등.
정치적 견해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수차례 투옥되었던 시인 고은은 그러나 아주 온화하고 교양 있는 사람이며, 절로 우러나오는 그의 인간애는 역경이든 명성이든 그것으로 인해 약해진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고은처럼 많은 시를 쓴 시인도 없을 성 싶다. 고은은 시를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를 몸소 구현(具顯)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자신의 리얼리즘은 자주 결빙점의 객관보다는 비등점의 주관이 강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세계의 시에 대한 그의 지식은 깊다. 가령 파울 첼란에 대해 고은은 “첼란이 아름다움 보다 진실을 선호한 것은 그가 반대로 언어의 아름다운 표현이 거짓이 되고 진실의 반대가 되는 걸 우려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고은은 나아가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인간성에 깃들어 있는 악의 다른 여러 형태들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단언한다.
좀 더 대담하게도 고은은 시의 독립적인 지위를 창조하기를 원한다. 그는 “시는 문학의 한 장르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고 문학 너머의 새로운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유산인 시의 지위를 예술 일반을 아우르는 하나의 메타예술로 확립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소설이 지배하며 논픽션이 범람하는 이 시대를 극복하고 싶은 것입니다.” 고은은 계속해서 “궁극적으로 나는 시 없는 시, 시 없는 시인이 되고 싶고 시인 없는 시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언어 이전과 이후의 시에 속하고 싶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 흔치 않은 책은 국제적 명성을 가진 철학자 라민 자한베글루가 일정한 기간에 걸쳐 몇몇 장소에서 시인과 가졌던 긴 대화집이다. 매우 겸손하고 또 호기심이 많은 이 철학자는 시인에게 말을 걸어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비전과 미학, 글 작업, 불안, 그리고 시인이 겪었던 그리고 그 안에서 집필해 온 여러 단계에 걸친 삶에 대해 말하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아주 치열하고 많은 걸 밝혀주며 풍요롭고 통찰력 있는 하나의 기록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한 중요한 시인에게 가까이 가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연하게도 시와 철학은 아무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의미 있고 풍요로운 대화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아쇼크 바즈페이(Ashok Vajpeyi)의 권두사(卷頭辭) 중에서)
내가 고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11월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열린 제 2회 ‘시인들의 만남’이라는 행사에서였다. 내 친구 아담 미츠니크는 폴란드의 시인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체슬라프 미워시의 1953년도 작품인 논픽션 『사로잡힌 정신』에 대한 토론자로 이미 나를 초대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고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동양인으로 여기고 있는데 남한의 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고은 선생님의 고요하고 맑은 품성에 매혹되었다. 영어를 말하지는 못해도 그의 몸짓 자체가 천 배의 말이었다.
나는 영어로 번역된 고은의 시를 좀 더 읽기 시작했고 그의 시 옆에 그의 흥미로운 삶의 조각들을 놓아보았다. 나는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 내 머릿속을 맴도는 모든 질문들을 물어볼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다행히 2019년 뉴델리에서 개최한 제2회 ‘아시아 시 비에날레’에서 우리의 길이 교차했다. 이번에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주된 원인은 고은 선생님의 삶과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전세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독자들의 영혼 속에 고은 시의 강렬한 속삭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미래 세대들이 이 시인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고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을 전 세계 사람들의 우편함에 넣을 수 있는 우체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고은을 읽고 대화하면서 깨달은 것은 그의 시는 한국어로 썼지만 인류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시는 세계의 심장 박동으로 우리 인간의 운명의 백지(白紙)를 두들기고 있다. 고은 선생님의 시는 번역으로 읽어도 유럽인, 아프리카인, 또는 서(西)아시아인을 위해 썼다고 느껴진다. 모든 위대한 시인들은 보편의 언어로 말한다. 바로 그 때문에 고은은 그렇게도 세계의 많은 시인들 작가들 문학평론가들로부터 기림을 받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시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배경을 알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은은 1933년 한국의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문둥병자 시인 한하운의 시집을 만나면서 시를 발견했다. 1989년 고은은 ‘한국민예총’ 의장이 되었고 이어 ‘한국작가회의’의 회장이 되었다. 1992년에 한국에 민간정부가 들어서자 고은에게 여권이 주어지고 작품의 번역이 허락된다. 그는 주로 문학제와 시 축제의 초대를 받아 전 세계를 널리 여행하기 시작하는데, 문학 축제에서 그는 사랑받고 기림을 받았다. 지난 30년 동안 고은의 작품은 동서양의 약 35개국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시는 전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널리 유명해졌다. 국내외에서 약 30개의 문학상 등을 받았는데, 그 일부를 보면 한국문학상, 그리핀 평생공로상, 마케도니아 스투르가 시 축제의 황금화환상, 그리고 멕시코시티 시 축제의 신 황금시대 시상 등이 있다. 그는 노벨 문학상 최종 명단에 수차례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 고은은 시인과 저항자, 삶과 죽음의 불안한 경계를 가로지르며 살아왔다. 시의 도달이 깊어질수록 그는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떤 시인도 고은보다 더 델피의 격언 “너 자신을 알라”가 더 심오하게 들어맞는 시인은 없다. 이런 이유로 고은에게 시는 되어감의 과정이며 그의 최후의 작품은 그 첫 작품과 필경 다르지 않을 수 없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완성된 시(詩) 작품이다. 고은은 우리가 나눈 대화에서 힘주며 말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시 없는 시, 시 없는 시인이 되고 싶고, 시인 없는 시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언어 이전이나 이후의 시에 속하고 싶습니다.” 그런 만큼 고은에게 쓰기란 말하지 않은 것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는 언어를 소유하지 않는다. 언어가 그를 소유한다. 그 사실은 한 시인의 존재와 언어의 비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 문학평론가가 고은에 대해 말했듯이 “어쩌면 그는 시를 종이에 쓰기 전에 시를 숨쉬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시가 펜이 아니라 그의 매혹적인 숨결에서 나온다고 상상할 수 있다.”
시인들은 어제나 용감한 영혼을 가진 자들이었고 독재와 전쟁, 폭력 등과 맞서 싸웠다. 이 관계에서 고은은 분명 블라디미르 마야꼽스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파블로 네루다, 르네 샤르, 그 밖의 많은 시인들 옆에 자리한다. 시인들은 위험스럽게 창조한다. 어쩌면 그 때문에 시인들은 체제 순응주의와 안주(安住)의 세계에서 언제나 반체제 주의자들인 것이다. 가장 용감한 행위는 시 쓰기이지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죠지 스타이너가 말한 것처럼 “시는 사유의 음악”이기 때문이고, 고은이 말하는 것처럼 “시는 역사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시적 질문은 고은 같은 시인-사상가에게서 최선의 것이 나온다.
고은의 영향력 있는 시는 한국에서 역사적 기억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의 시적 증거는 오늘의 한국의 집단의식의 한 부분이다. 동시에 고은은 보편성을 가진 시인이다. 우리는 그를 동양적 고정관념의 한 전형(典型)으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시는 물과 같다. 시는 태어나고 나중에 번역되는 언어와 문화의 모습을 취한다. 그래서 모든 시에는 숨어 있는 힘이 있고, 그것은 새로운 언어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고은의 시에 불멸성을 주는 것은 시의 바로 이 같은 변형하는 특질이다.어떤 시에서 고은은 당당하게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세상 떠날 때/나도 춤추며 떠나리” 춤은 존재의 가벼움이며 그것은 한 시인의 무게를 그가 아니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꾼다. 그리고 실로, 눈물과 재(灰)에서 남을 것은 시 그리고 그 시의 영겁회귀뿐이다. 2020년 6월, 인도 델리에서
-라민 자한베글루의 ‘시인의 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