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도 되는 꽃은 없다
글을 마무리하는 중에 ‘이태원 참사’가 터졌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 속에, 사회적 참사가 반복될 때마다 저자를 가장 분노하게 만드는 장면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쳤다. 바로 무릎을 꿇는 희생자 유족들 모습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故) 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종철 씨와 8년 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인 이남석 씨는 모두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모두 희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 앞에서였다.
누가 누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묻는 저자의 질문이 가슴팍을 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며 자신을 한탄한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인용해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내는 현대인들의 자기 연민에만 집착하는 현상이 전체 생명 경시 풍조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함께 잘살아보자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지금 잘살고 못사는 것도 전부 자기 덕이자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좌절감을 느낀다고 덧붙인다.
현실로 돌아와 참사와 희생 뒤에 주판알을 튕기는 정치의 비열함에 더는 놀아나지 말자고 당부한다. 사고와 참사, 희생자와 사망자를 구분하는 행태, 국론을 분열해 책임을 면피하려는 작태에 놀아나지 말자는 것이다.
특정 진영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이슈로 둔갑하여 추모하는 것마저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 분위기는 분명 병리적이고 그 뒤에서 상처받는 이들은 희생자 유족들이며 나 또한 그들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검색창에 ‘박지희’를 치면 나오는 사건에 관한 진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조리
2020년 팟캐스트 〈청정구역〉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게 “4년 동안 뭣하다가 이제야 김재련 변호사와 나왔느냐”라는 발언으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기사가 저자 이름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교묘한 발췌와 아니면 말고 식 기사의 전형으로 장차 저자가 맞닥뜨리게 될 고난의 시작이었다.
이 사건의 진상을 꼼꼼히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한 개인의 신원 회복의 문제를 넘어 여성가족부 해체의 문제까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사건 발언의 요지는 ‘뭣하다가 이제’가 아니라 ‘왜 김재련 변호사’이냐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 관련 업무가 포함된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으로 일하며, ‘화해치유재단’ 이사로서 논란의 한복판에 선 인물이다. 또 그는 여성가족부에서 ‘해바라기센터’를 통합하는 데 주축을 담당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 씨 변호인을 맡았던 그가 다시 박원순 전 시장의 피해자 변호인으로 등장했다. “왜 그랬을까?”라는 물음표가 외려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베일에 싸인 ‘해바라기센터’의 실상을 알려주는 책의 중간 부분은 신경망처럼 많은 사건과 얽히고설켜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연관된 발언, 변호사 김재련과 해바라기센터, 정치화 제도화된 페미니스트와 여성가족부 폐지 사태로 이어지는 퍼즐이 맞춰진다.
기득권화한 페미니즘, 선전도구가 된 언론, 내로남불 세상에서 생존법
책은 각자도생 탓에 측은지심조차 잃어버린 현대인의 초상으로 말문을 떼며 저자가 느낀 부조리의 좌표를 기록한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즘, 언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요지경이다.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페미니즘 담론을 ‘래디컬 페미니즘’, 톡 까놓고 ‘꼰대 페미니즘’으로 진단한다. 자기주장만 옳다고 생각하며 내로남불의 행태를 일삼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여권 신장이 목적이 아닌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페미니즘을 악용하는 자들이 페미니즘을 훼손하고 반페미니즘을 양산한다는 지적이다. 여가부는 물론 해바라기센터, 정치적 입장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는 여성단체들 사례로 적나라하게 민낯을 공개한다. 심지어 페미니즘이라면 덮어놓고 지지했던 진보 진영과 언론들도 젠더 갈등을 증폭하며 남녀를 가르는 데 한몫했음을 꼬집고 있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대중이 선동된 후다.’라는 괴벨스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방송에 몸을 담고 언론의 역할과 책임이 어떤 체제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 언론들이 괴벨스의 저 말을 지침으로 따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에게 언론의 색깔을 대놓고 밝히자고 한 저자의 주장은 전혀 낯설지 않다.
처음 출판 제안을 받았을 때는 ‘내로남불의 세상에서 생존하는 법’을 구상했을 정도로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지적하는 세태를 고발하고 싶었다고 한다. 너는 진보니 나는 보수니 하는 케케묵은 이념 전쟁보다 상식을 존중할 때 충분히 사라질 구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