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 닭이 되기 위해 태어난 미래의 대스타 ‘일공일호’
“꿈꾸는 삶은 결코 후지지 않지. 삶은 생각하는 쪽으로 스며들거든!”
사극 대사를 읊는 듯한 독특한 말투와 흡사 발레리나와 같은 우아한 몸짓. 오디션장에 일공일호가 나타나자 백 마리의 다른 후보 닭들은 벼슬을 바싹 세우고 그를 무시하고 경계한다. 일공일호를 제외한 백 마리의 닭은 먹는 사료에서부터 휴식과 수면 시간까지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냠냠 양계장’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반면 일공일호는 주인 할아버지처럼 늙고 찌그러지고 구멍이 숭숭 뚫린, 허름한 산골짜기 컨테이너에서 수백 마리 닭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금이 간 창문 곳곳에 붙여진 잡지와 주인 할아버지가 종일 틀어 놓는 옛날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배운 일공일호는 잡지 속 ‘럭셔리 라이프’를 자신의 운명으로 믿으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 좁아터진 공간에서 매일 수련하듯 제자기 걷기 운동을 해 왔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법! 마침내 꿈의 무대에 선 ‘일공일호’. 이제, ‘일공일호’의 화려한 언변과 뻔뻔한 자신감이 돋보이는 솔직하고 당당한 매력에 빠져들 일만 남았다.
◆ 세상 모든 치킨 맛을 정복한 미래의 치킨왕 ‘염유이’
“그럼 나도 바삭바삭한 사람이 될래. 프라이드치킨처럼 기본이 훌륭한 사람!”
어린이 판정단이 앉은 객석에서 ‘일공일호’의 1호 팬이 된 사람이 있다. 바로 『천하제일 치킨 쇼』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염유이’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을 만큼 약하게 태어났던 유이는 부모님이 직구로 산 ‘치킨 수프’를 시작으로 치킨이라면 자다가도 눈을 뜨는 치킨 마니아로 자랐다. 성적은 좋지 못해도 영어로 된 온갖 치킨 이름은 술술 외워서 어떤 치킨도 막힘 없이 주문하는 유이의 꿈은 이제 ‘치킨왕’. 세상의 모든 치킨을 맛보는 것이 유이의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양념치킨처럼 달콤하지 않다. 자신의 꿈을 교실에서 당당히 선포하자마자, 치킨은 받아쓰기 백 점 받은 날, 줄넘기 연속 오십 번 성공한 날에만 먹을 수 있다는 새로운 규칙이 생긴 것이다. 유이의 꿈을 순수하게 인정해 주는 사람은 발명왕이 꿈인 고건우뿐. 중학교 수학 문제를 풀 만큼 똑똑하기로 소문난 건우는 부모님이 짠 프로그램대로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학원을 여러 곳 전전해야 한다. 진짜 꿈은 ‘발명왕’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이 과학자라고 말하는 건우는 자신의 꿈에 당당하고 솔직한 유이를 보며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한다.
‘천하제일 치킨 쇼’의 평가단으로 참여하기까지의 유이의 여정은 일공일호가 펼치는 무대 위 쇼의 현장과 엇갈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려진다.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오게 된 일공일호와 염유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일생일대 멋진 쇼의 시작을 알린다.
◆ 무용한 것을 꿈꾸는 우리의 더없이 멋진 쇼
“비행기도 단번에 날지 않아. 날기 위해서 먼저 천천히 달려야 하지.“
좁은 닭장 속에서도 운동을 멈추지 않는 일공일호의 꾸준한 노력은 늙은 산란 닭에게 소용없는 일로 비친다. 그리고 마침내 일공일호가 치킨 쇼에 오른 순간에도 ”쇼처럼 근사하게“ 살고자 하는 그의 꿈은 다른 닭들에게 무시당한다. 철저하게 계획된 프로그램대로 살아가는 것이 정해진 행복이라고 믿는 백 마리의 닭에게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누구냐가 중요한 법”이라고 말하는 일공일호. ‘최고의 사료를 찾는 미각 테스트’, ‘가장 큰 울음소리를 뽑는 목청 테스트’ 등 새로운 라운드를 치르며 경쟁하는 사이, 후보 닭들은 스스로 일구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이 진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꿈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유이도 마찬가지다. 요리사도 요리 연구가도 아닌, 그저 맛있는 치킨을 많이 먹는 것이 꿈이라는 유이의 포부는 학교에서 가벼운 웃음으로 무시당한다. 그러나 인생은 매콤달콤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뜨거운 기름과 불 속에서 묵묵히 견뎌야 바삭하고 담백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유이는 그 꿈을 통해 깨달아 간다. 건우가 부모님이 마련한 학업 스케줄에서 벗어나 일탈의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사람도 유이다.
남들이 그저 무용하다 말하는 자신만의 꿈을 지키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성실하게 해낸 일공일호와 유이는 서로 무척이나 닮았다. 행운일까, 아님 운명일까. 치킨 쇼의 평가단으로 참여하게 된 유이는 어쩐지 자꾸 눈길이 가는 ‘일공일호’의 모습을 응원하며, 한편으로 또 다른 세계로의 눈을 뜨게 된다. 마지막 라운드를 앞둔 일공일호 또한 마찬가지. 이 기상천외한 쇼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침내 그것을 마주한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 심사평
최고의 황금 닭을 뽑는 한바탕 쇼를 통해, 아무런 의심 없이 지금의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세태를,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 준다. 누구나 ‘무용한 것을 꿈꿀 자유’가 있다는 것을 매우 감각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재치와 유머로 끝까지 즐거움을 주고, 적절한 과장과 풍자가 섞인 우화 형식이 신선함을 주는 작품이다.
-심사위원: 김경연(아동문학 평론가), 황선미(동화작가), 강정연(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