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드라마로 120여 년 동안 사랑받아온 고딕 문학의 정수
흡혈귀 문학의 원형을 제시한 브램 스토커의 대표작
목깃을 세운 검은 망토, 새하얀 피부에 뾰죡한 이를 드러낸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드라큘라는 1897년 원작이 발표된 후 지금까지 560여 차례에 걸쳐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다. 지금 우리 머릿속에 남은 드라큘라의 이미지는 대부분 영상으로 옮겨진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작 『드라큘라』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낯선 형식에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포 클리셰 하나 없이, 다양한 인물 군상이 펼쳐내는 천변만화의 이야기가 집약된 원작은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를 안개 같은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드라큘라』 이전에도 흡혈귀 문학은 존재했으나 이 작품은 그간의 작품들에서 단편적으로 이어지던 이미지를 가공하여 집대성한, 그야말로 흡혈귀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간체 문학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사건을 교차적으로 배치하고, 이를 복선과 암시, 반전으로 활용한 구조는 여타 흡혈귀 소재 작품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드라큘라』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조너선 하커는 영국인 변호사로 한 백작의 의뢰를 받아 그를 만나기 위해 트란실바니아로 떠난다. 백작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처음 본 조너선의 안위를 걱정하며 급기야 백작의 성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극구 말리기 시작한다. 조너선은 그들의 만류에도 백작의 성으로 들어서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공포의 실체와 마주한다. 백작이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흡혈귀라는 사실을 깨닫고 성에서 탈출하고자 하나 백작의 마력에 휩싸여 성에 갇히고 만다. 한편, 한때 자신이 구애했던 루시가 기이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 정신과 의사 존 수어드는 반 헬싱 박사에게 루시의 치료를 부탁한다. 루시의 병세를 살펴보던 반 헬싱 박사는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흡혈귀, 즉 드라큘라 백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료들과 그의 뒤를 쫓는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으로 돌아온 조너선도 부인 미나와 함께 이들에 합류한다. 그러나 곧 미나가 드라큘라 백작의 표적이 되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흘러간다.
아름다울 만큼 무질서한 공포의 진원에서 감정으로 써내려간 정교한 방정식
브램 스토커는 어느 날 잠을 자다가 형언할 수 없이 기이한 꿈을 꾼다. 꿈속에서 사악하고 무시무시한 마녀 세 명에게 붙잡혀 목을 뜯기려는 찰나, 세 마녀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남자가 나타나 “모두 물러서라, 이 남자는 내 것이다!”라며 절규에 가까운 호통을 치자 자신을 잡고 있던 마녀들이 줄행랑을 치는 악몽이었다. 잠에서 깬 스토커는 얼른 꿈의 내용을 메모해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명작 『드라큘라』가 탄생했다. 꿈에 나온 내용은 실제 작품에서 조너선 하커가 드라큘라의 세 신부에게 봉변당하는 장면으로 재현되기까지 했다. 배경 설명이나 작가의 개입이 없는 서간체 문학임에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읽을수록 배가 되는 공포감은 작가의 생생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이며 공포의 근원이 되는 드라큘라 백작은 사실 작품 중반 이후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작의 모습이 사라진 이후 공포감은 배가 되는데 이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공포, 즉 상상의 힘에서 기인한다. 인간 사회 저변에 퍼져 보이지 않는 절대 악의 실체를 작품 전체에 봉인한 브램 스토커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 감춰진 욕망과 충동이 날것의 에너지로 분출되는 『드라큘라』가 고전의 반열에 올라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겹겹이 싸인 감정의 층위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고전 문학을 읽는 재미 역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