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의 나이로 시대와 인간의 고뇌를 섬세히 그려
수많은 걸작의 탄생을 이끈 메리 셸리의 전설적 작품
과학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한 이래로 인간은 끊임없이 존재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시대가 원하는 모습과 개인이 인식하는 모습 사이의 괴리는 과도한 욕망을 불러왔고, 끝없는 가능성을 지닌 과학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불안과 공포, 우울과 절망 같은 감정들을 자라나게 했다. 이 시대의 호러라 불리는 작품『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는 바로 이 점에 천착했다. 걷잡을 수 없이 어긋난 욕망으로 괴물을 탄생시킨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에서, 세상 사람들은 물론 자신을 직접 만들어낸 단 한 사람에게까지 존재를 부정당해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물의 모습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은 드러난다. 또한 산업혁명 무렵에 쓰인 작품인 만큼 과학의 발전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짐작해볼 수도 있는데 이는 인간 복제 기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지금이기에 더욱 심오하고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놀랍게도 문학사를 뒤흔든 이 작품은 18살의 메리 셸리가 동료 문인들과 스위스 여행을 하던 중 ‘무서운 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단순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탄생한 소설이다. 시대적 한계로 여성 작가가 인정받기 힘들었던 시기라 출간 당시엔 작품의 가치에 대해선 좋지 않은 평가가 이어졌지만, 이후에는 SF 문학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작가와 다양한 작품에 큰 영향을 준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어두운 물음표로 남아 있던
사회와 인간의 폐부를 찌르는 근원적 질문
‘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
성취욕에 눈이 멀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젊은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그런 그의 손에서 눈을 뜬 흉측한 모습의 괴물. 서로의 존재를 그토록 갈망했다가 결국 서로를 누구보다 끔찍한 파멸로 이끄는 이 비극적인 관계를 그저 개인 간의 복수극으로만 볼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자신의 건강까지 잃어가며 목적을 달성한 프랑켄슈타인은 어렵게 만들어낸 피조물을 세상에 결코 나와서는 안 됐을 ‘괴물’이라 여기고 그에게서 멀리 달아나고 마는데, 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이 한 존재를 얼마나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잔인한 창조주에게 처참히 버려진 채 사람들과 달리 징그러운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자신을 드러내는 법보다 감추는 법을 먼저 배우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들마저도 부정당해 서서히 진짜 괴물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피조물을 통해서는 더 근원적인 인간의 속성을 엿볼 수 있다. 타인과 사회에 닿지 못하고 철저히 고립되어 빠져나갈 길 없는 고독의 심연에 놓인 그는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뿌리 깊은 외로움을 형상화한다. 그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던 펠릭스와 애거사 가족과의 고통스러운 이별은 괴물이라는 껍데기 안에만 존재했던 그의 순수한 열정을 꺼트린 외부 사회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괴물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와 인간이 그 과정을 필연적으로 답습할 것이라는 잔인하고도 섬뜩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프랑켄슈타인』이 시대를 대표하는 호러 명작으로 남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과학기술이 발전한 사회 속에서 인간은 괴물을 만들어내는 프랑켄슈타인이 될 수도 있고, 순수한 열망을 잃고 끝내 괴물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이 주인공 과학자가 아닌 괴물의 이름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건 우리가 익히 아는 괴물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목으로 쓰인 주인공 이름이 지닌 중의성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성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요즘, 다시 한 번 이 작품이 묻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