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데콧상 수상 작가 필립 C. 스테드의 신작 그림책
아내 에린 E. 스테드와 함께 만든 첫 그림책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로 칼데콧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필립 C. 스테드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여러 그림책들을 쓰고 그리며 자신의 세계관을 공고히 다져 왔다. 이번 신작 《창이 되어 주고 싶어》는 그런 작가의 개성과 장점, 세계관과 작품관을 여실히 꽃피우는 작품이다. 주로 아내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그림책을 작업해 왔던 것과 달리, 이번 신작은 글·그림 모두 필립 홀로 작업했다. 작가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시적인 텍스트와 부드럽고 온화한 삽화의 결합이 보여 주는 놀라운 마법은 《창이 되어 주고 싶어》를 읽는 모든 독자의 마음에 낙낙히 스며들 것이다.
■ 사랑하는 나의 개가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_사려 깊은 상상으로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세계, 그곳에 새겨진 애정과 위로
《창이 되어 주고 싶어》의 첫 장면에는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는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이 개는 화자(작가)가 펼치는 무한한 상상의 목적이자 대상이다. 화자의 평범한 혹은 비논리적인 여러 상상은 무지개다리를 넘고 고래가 헤엄치는 하늘을 지나 ‘나의 지혜로운 늙은 개에게 창이 되어 주고 싶다’는 하나의 소망으로 귀결된다. 내가 사랑하는 반려견, 더 나아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더 많은 것을, 더 넓은 세계를 한계 없이 꿈꾸길 바라는 그 사려 깊은 상상은 독자들에게 기묘한 안정과 감동, 애정과 위로를 선사한다.
《창이 되어 주고 싶어》의 영감과 모델이 되어 준 건 스테드 부부와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반려견 ‘웬즈데이’다. 제목의 ‘지혜로운 늙은 개’는 바로 웬즈데이이고, 필립 스테드는 이 그림책의 헌사를 세상을 떠난 웬즈데이에게 바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창이 되어 주고 싶어》는 자신의 곁을 떠난 웬즈데이가 ‘되어 본 적 없는 것도, 되어 본 것도’ ‘즐겁게, 자유롭게’ 꿈꿀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장난스럽고도 애틋한 러브 레터 같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 차분하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담아낸, 한 편의 시와 같은 그림책
서정적이면서도 단단한 힘을 지닌 필립의 문장력은 〈아모스 할아버지〉 시리즈 등의 전작들을 통해 이미 인정받은 바 있다. 《창이 되어 주고 싶어》에서도 역시 낱말과 어미, 문장 구조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독특한 운율을 만들어 냈다.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텍스트는 소리 내어 읽었을 때 그 매력이 더욱더 빛을 발한다. 보드북에서 그림책으로, 이제 막 독서 범위를 넓혀 가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마중물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더불어 그림책을 사랑하는 성인 애독자들에게는 간결한 텍스트 속에서 다층적이고 깊이 있는 함의를 읽어 내고 발견하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 선명한 색감과 과감한 연출로 담아낸 사랑스러운 세계
《창이 되어 주고 싶어》에는 거북이와 개구리, 부엉이, 생쥐 등 아주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 동물들은 페이지를 거듭 넘겨도 사라지지 않고 화자, 그러니까 작가의 상상에 중첩되어 등장한다. 우리의 일상이 한 덩어리가 아닌 여러 개의 작은 조각들로 채워져 있듯, 이 무한한 상상 역시 동물들의 크고 작은 몸짓으로 점점 커져 간다. 그렇기에 필립은 선명한 색감과 독특한 질감, 배경 묘사를 매우 절제하는 화면 연출을 통해 모든 동물들을 섬세하고 진중하게 그려 냈다. 책장을 찬찬히 넘기며 《창이 되어 주고 싶어》 속 숨어 있는 작은 디테일들을 찾아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을 따라가 보자. 누구든, 결국에는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