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두 장 떨어진 꽃잎이
꽃산이 되어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을 출간하며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은소 작가가 역사로맨스 『곳비 꽃비』를 출간했다. 드라마로도 방영되며 더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맥을 잇듯 『곳비 꽃비』는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실존 인물에 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안평 대군이라는 재능 있고 뛰어난 그러나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왕자는 『곳비 꽃비』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다정하고 때로는 장난스러운 얼굴을 한다. 거기에 곳비라는 가상의 인물이 더해져 훌륭한 로맨스 서사가 만들어졌다.
차분하고 단정한 문체는 이야기의 정서를 만든다. ‘궁녀’와 ‘대군’이라는 관계에서 생기는 애절함을 넘어 인간성을 느낄 수 있다. 이은소 작가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이야기를 섬세하게 하나하나 쌓아 올린다. 작은 꽃잎이 한 장 두 장 떨어지듯 차분히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느새 마음에 쌓인다. 그렇게 꽃비는 꽃산이 된다.
엇갈리는 사랑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채로운 면모
삼각 관계는 로맨스 서사에서 유구하게 쓰여 왔다. 한 여인을 사랑하는 두 사내와 두 사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인은 사랑받고자 혹은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실히 채웠다. 짝사랑의 계보를 잇는 사각 관계 역시 큰 틀은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는 다른 이를 사랑한다. 역시나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곳비 꽃비』의 사각 관계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 깊이가 더해졌다. 곳비가 용을 향한 사랑을 마음에 묻는 이유는 용의 마음이 어디를 향했는지와는 무관하게, 곳비가 궁녀이기 때문이다. 궁녀의 상사 문제를 엄히 다루던 시대였기에 궁녀는 왕이 아닌 다른 사람과 맺어질 수 없다.
이 시대적 배경은 다른 인물에게도 한계로 적용이 된다. 영신은 여인으로 태어나,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사내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그렇기에 용의 마음을 얻으려 애쓴다. 영교는 궁녀인 곳비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할 수 없다. 그리고 용은 대군으로서 법도를 따라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명작처럼, 외부적 요인에 의해 좌절되는 로맨스 서사는 언제나 사랑받아왔다.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상황의 안타까움은 모두를 이입하게 만든다. 『곳비 꽃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얽힌, 사람들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사랑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랑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기에 사랑을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 연적이지만 동시에 친우이기에 미워하지 않는 마음.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곳비 꽃비』를 읽는 독자들은 그 최선을 목도하며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확장되고,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