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성서를 봉독하며 예배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어느 곳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을 것이다. 이토록 두 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다. 약 2천 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한 사람의 유대인이 선교 활동을 시작 했다. 그는 로마 제국의 탄압을 받고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의 사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성서가 탄생했다.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사함을 받아 구제되어야 한다는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교전(敎典)이 성서이다. 성서는 여러 선지자들이 써서 집대성했다. 성서는 『구약성서』 전 39권과 『신약성서』 전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흠정역성서』가 간행된 것이 1611년이고, 셰익스피어가 최후의 작품 「폭풍」을 쓴 것이 1611년이다. 그가 사망한 해가 1616년이고, 폴리오판 셰익스피어 전집이 1623년에 출판되었다. 문제는 이 두 책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끼치며 연관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중략)
〈리어 왕〉은 성서와 정신의 궤를 함께한다. 성서와 셰익스피어는 ‘인유(引喩)’가 성립된다. 인유는 두 가지 의미가 교차하는 기호이다. 셰익스피어는 성서의 의미를 자신의 미적 체계 속에 재정립했다. 그런 수사학적 기교는 상호 가치의 교접이요 활용이다. 스티븐 마크스는 이와 관련해서 말했다. “인용의 형태로 하는 그런 작업은 한 구절만의 결합이 되기도 하고, 작품의 주제와 구조에 포괄적으로 포함되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가 인용한 성서는 암호화된 의미로 전달된다. 성서 해석의 ‘예표론(豫表論)’은 성서와 작품 간의 유사점과 대응 관계를 강조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성서에서 일어난 일이 〈리어 왕〉에서 발생한 일로 표상되면서 그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이런 수사(修辭)는 원천과 유사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와 성서의 예표론적 관계를 설명하면서 마크스는 「욥기」와 〈리어 왕〉을 예로 들고 있다. “성서의 비극을 모방하는 듯한 플롯, 인물, 이미지 표현으로서 셰익스피어는 인간과 신의 화해 문제를 탐구했다”고 마크스는 주장했다.
성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봉독한 책으로, 인간사에 거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신앙의 고백인 동시에 유대 민족의 역사, 법률, 시, 철학이 담겨 있는 성서는 위대한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학에도 영감을 불어넣었다. 성서와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운 것으로 알려진 셰익스피어에게 성서는 종교적 발상의 원천이 되었다. 이에 더해 타고난 언어 구사력과 무대 예술에 대한 섬세한 감각,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 그리고 뛰어난 연극적 상상력은 수많은 관객과 독자들을 매료해왔다. 이러한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에 대한 이해와 그 상호 연관성을 파악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셰익스피어 연구자인 이태주 교수는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 왕〉을 중심으로, 셰익스피어 희곡에 담긴 성서적 요소와 그 상호 연관성을 『셰익스피어와 성서』에서 고찰했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역사 흐름에 따른 문화예술의 발전 모습, 정치·종교적 양상을 살펴보았다. 셰익스피어 연구자인 헤르만 울리치, 브래들리, 리처드 슈얼 등의 비평을 통해 〈리어 왕〉 텍스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시도하였다.
비극 〈리어 왕〉은 선한 집단이 악의 집단에 의해 파멸되고, 동시에 악의 집단도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자멸하는 인간 종말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매면서 불효한 두 딸을 저주하던 광증의 리어는 시련을 겪으면서 신에게 항의하고 호소하면서 구제의 손길을 내민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운명과 신에 관한 문제를 파헤치며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탐구한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자화상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