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잠을 못 자는 작가가 신혼여행을 가면?
박보현 작가는 여행이 불면으로의 여정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는 실제로 그가 여행 중에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작가는 경험을 통해 그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잠을 자지 않는 것. 그는 여행 중 잠을 자는 대신 글을 쓴다. 하루 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대한 기록부터 과거의 기억, 또는 개인적인 결심에 이르기까지 밤이 오면 그의 의식은 한계를 모르고 자유롭게 뻗어 나간다. 어쩌면 작가의 진짜 여행은 모두가 잠들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셈이다.
그런 그가 포르투갈로 신혼여행을 갔다. 더 이상 작가는 혼자가 아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사랑하는 아내가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불면의 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를 찾아온다. 어찌 그가 포르투갈에서 쓴 글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면의 밤에 몸을 맡기고 자유로운 사색에서 이어지는 꿈에 대한 이야기. 작가가 선사하는 ‘밤으로의 긴 여로’를 따라가 보자.
여행에서 마주하는 무의식의 기억
엄마는 그날 지갑을 잃어버렸다.
갓난 나를 안고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였다.
평생을 서울과 인천에서만 살았던 엄마는 부산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남편의 직장 발령 때문이었을 뿐,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그날 그 기차를 타고 있었고, 지갑을 잃어버렸다.
가방 안에는 천 기저귀와 유아 용품들이 가득했다.
품에 안은 아들은 아직 걷지도, 말을 알아듣거나 하지도 못했다.
그저 옹알옹알, 울고 보채지만 않아도 다행인 일이었다.
(지갑 中)
생생한 포르투갈 감성
우리는 알마스 성당에서 한 블록을 내려와 모자 가판대를 구경하고 있었다.
작지 않은 가판대에, 적지 않은 모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프리카계 여자가 모자를 팔고 있었다.
말이 많지 않았지만 세심하고, 미소가 박하지 않은 여자였다.
덕분에 나는 여러 개의 모자들을 써볼 수 있었다.
가판대를 구경하는 이는 아내와 내가 전부였지만,
거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가 들려왔다.
(버스킹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