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구한말, 숙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들이 만들어가는 조선의 새 역사
오래된 세도정치의 폐습으로 백성들의 조정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극에 달하고, 왕실을 둘러싼 세도가들의 권력 대결이 격화되며, 먼 서쪽에서 온 이양인들에 의해 ‘민주주의’, ‘만민평등’, ‘야소교(그리스도교)’ 등 국가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개념이 전파되기 시작하던 혼란의 조선 말. 철종 임금이 후사 없이 붕어(崩御)를 맞고, 어린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권력을 쥐게 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이러한 서양 세력과 그들의 사상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엄격히 탄압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뛰어난 무공과 굳은 심지를 소유했으나 철모르는 소년의 일면 역시 가지고 있는 청년승 소웅(업보), 그와는 태생의 숙명으로 얽매인 사이이며 남몰래 그를 사모하는 여인 소아, 야수 같은 행동력과 싸늘한 손속을 갖추고 소아에게 일그러진 애정을 가진 쇠돌바우, 그리고 어릴 때부터 숲속을 뛰어다니며 무공을 갖춰 임금님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당돌한 성정의 야생녀 초혜…. 네 명의 소년소녀는 태어나자마자 다양한 사연을 안고 세상에 홀로 되어 현무, 장무, 백무의 이름을 쓰는 세 스님의 슬하에 거둬져 함께 자라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들은 서로 헤어져 장성하게 되고, 장성한 청년이 된 업보가 의문의 상처로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산속 화전민들의 마을에 나타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초혜와 오해 가득한 만남을 하게 되면서 네 명의 운명은 급변한다.
부득이한 선의의 거짓말로 시작된 업보와 초혜의 여행은 예상치 못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 그들은 ‘동학도의 난’ 이후로 극렬해진 ‘반역도’에 대한 탄압 속에서도 조선의 변화를 꿈꾸는 민초들, 야소교인들, 개화파 지식인들과 인연을 맺게 되는 한편 호랑이 같은 권력과 여우 같은 권모술수를 가진 독재자 흥선대원군과 어린 나이에 구중궁궐의 암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허우적대는 중전 민씨,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권문세가들의 투쟁에 말려들며 거대한 제국주의의 물결 속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는 조선의 운명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경기대 문학연구소 연구위원, 농민문학 이사 등을 거쳐 한국문인협회 및 소설가협회 회원으로서 『영원한 삶의 소야곡』, 『끝나지 않은 전쟁』, 『소설 신기단』등 다수의 작품으로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권오형 작가는 소설 『경복궁의 유령』 속에서 어린 시절, 6.25의 화마 속 험난한 피난 생활을 하면서 할머니께서 들려 주신 신비로운 이야기를 기반으로 독특한 한국적 상상력을 전개해 나간다. 특히 신비로운 전설적 소재와 구한 말의 혼란한 실제 역사가 교차하며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와 지역 방언을 잘 살린 현실감 넘치는 필력은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