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되고도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는, 1990년대에 나온 플레이스테이션1도 사실 상 레트로 기기 취급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더 오래된 패밀리 컴퓨터나 마스터 시스템 같은 진짜 골동품 직전 게임기들이나, 윈도를 쓰는 PC가 대세가 되기 이전의 MSX나 Apple 같은 정말 옛날 PC들은 그냥 이름이라도 알면 나름 레트로테크 쪽에 관심이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사실 ‘전자오락’이라는 옛스런 말로 꼭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간단한 올드 게임을 돌릴 수 있는 귀엽거나 신기한 옛날 하드웨어들 자체는 꼭 수집가가 아니더라도, 추억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기분에서 우러난 관심을 누구라도 한번 가져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해서 이 책은 소위 레트로테크 쪽에 관심이 생겨서 내가 이 쪽으로 한번 파보기 위해 입문을 하겠다~라는 사람들에게는, 한번 꼭 봐둬야 할 만한 레트로 게임기기 관련 책이라고 하겠다.
수집용 아이템이 아니라 레트로 기기 자체에 대한 연구서
본 서적은 미국의 인터넷 방송인인 피터 리(Peter Leigh)가, 자신이 좋아하는 레트로 하드웨어 기기들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 일단 20세기까지의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기나 PC 등의 전자기기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개중에선 한국 사람들의 시점에선 정말 생소한 것들도 있을 것이고, 지금 보면 “이런 걸 재밌다고 했다고…?”~라고, 요즘 시점에서 보면 의문을 품게 될 만한 문자 그대로의 ‘장난감’ 직전인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신기한 걸 만져보고 갖고 놀고 하고 싶은, 그런 놀잇감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저자인 피터 리도 자신의 유투브 채널이나 자신의 저서 등을 통해서 스스로가 다양한 레트로 아이템들에 빠진 매니아임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고 직접 만져본 기기들을 모아다가, 자신이 겪고 느낀 레트로 기기들과 해당 기기들로 할 수 있는 대표적 게임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기 때문에 (개인 취향이 조금 개입되었을 수는 있지만) 당대에 이런 기기들을 실물로 접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 옛날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하고 살펴보는 재미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장터에서 우연히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서 즐겨볼 만한 레트로 아이템을 원한다면
1970년대에 퐁과 인베이더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자오락’을 오락실=게임센터가 아닌 집에서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게임기나 PC등의 각종 하드웨어가 세상에 등장했었다. 그리고 이 하드웨어들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 여러 좋은 추억을 남겼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역사라는 흐름에 묻혀서 잘 보이지 않게 된 기종들도 많았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된 기기들이라고 해서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고, 외려 잘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을 다시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옛날 흘러간 것들을 찾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위 ‘레트로’라는 유행 흐름으로 만들어서 다시 되돌아보는 풍조가 생기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부 중고 게임의 이상한 가격 인플레이션이나, 마치 주식투자하듯이 패키지 게임을 사서 쟁여놓는 괴이한 풍조가 부작용으로 생겨났다는 의견도 있었다 보지만, 그 만큼 옛날 게임들에게도 사람들의 관심이 돌아가고 하는 것은 레트로 유행 나름의 좋은 영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저런 레트로 게임과 레트로 게임 하드웨어들에 관심은 있어도 어떤 기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게임이 돌아가는지 알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나마 요새는 인터넷을 통한 이미지 검색 등으로 각종 레트로 하드웨어 기기들의 외양 자체를 접하기는 쉽지만, 이런 식으로 다양한 레트로 하드웨어들 관련 자료와 이야기들이 정리된 책을 보는 것은 나름 의미있는 체험이 될 것이다. 우연히 중고 장터 등에서 보고 바로 입수할 수 있도록 안목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도 이런 책을 보는 것은 의미있는 탐구가 될 것이다.
단순히 게임 화면을 보고 그러는 것 만이라면 유투브나 여기저기서 영상이나 인터넷 글 등을 통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실제 돌아가는 기기를 찾아서 해보고 싶은 입장에서 ‘이 게임은 이 기기에서 돌아간다’ 같은 정보 등을 사전에 입수해 둔다면, 직접 찾아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준비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스팀이나 닌텐도, 플스도 아닌 옛날 기기들과 옛날 기기 게임들에 대한 책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이 대세가 된 현재의 한국에서는 각종 컨슈머 게임도 사실상 골동품이나 매니아 지향이 되어 버린 셈인데, 막연히 골동품이나 레트로 컬렉터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떤 기기들이 나왔고 당시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 같은 이야기를 포함하는 책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막연히 옛날 게임들을 소재로 하는 책들이나 흘러간 고전 게임기의 게임 목록 카탈로그 책들도 이미 국내에 이것저것 나와 있는 마당에서, 이런 레트로 하드웨어 기기 자체에 대한 책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순서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이 책은 흔히 알려진 패미컴 이전에 미주를 제패했던 아타리 게임기나 영국이나 유럽 등지의 마이너한 옛날 PC기종들을 비롯하여, 레트로 매니아인 저자 피터 리 본인이 추려낸 여러 레트로 기기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자매기나 시리즈가 이어지지 않고 흘러간 기기 대다수가 단순히 메이저가 되지 못한 패배한 하드웨어라는 인상을 가질 수 있는데, 사실 어떤 성공한 하드웨어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골동품으로 창고행이 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누군가에 의해 버려지게 되거나 하는 슬픈 경우가 많다. 막연하게 주류가 되는 성공 사례 이외에도 다양한 시도와 도전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이 책에서 여러 레트로 하드웨어의 이야기를 보면서 왜 성공하고 왜 망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있는 것도 본서의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 보인다.
레트로 하드웨어라는 말에 처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나, 이제 관련된 레트로 아이템의 수집이나 게임 관련 자료 정리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적절한 입문과 정리가 될 만한 도감 형식의 책이라, 21세기 현재에도 부족한 게임 연구자들이나 올드 취향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