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리가 전쟁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중앙아시아 역사 3천년에 걸친 전쟁사를 지정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동과 서의 경계지대에 놓인 중앙아시아는 전형적인 강대국 간의 힘의 중립지대이자 완충지대였다.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은 이 지역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 두거나 아니면 최소한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였으며, 이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그대로 전쟁사가 되었다.
중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남방에서 올라온 페르시아계 주민과 북방에서 내려온 튀르크계 주민이 어울려 살아왔던 초원과 사막의 공간이다. 중앙아시아의 지리적 범주는 이란의 북부 호라산, 고대 문명이 꽃피었던 아프가니스탄 북부, 그리고 중국의 신장 지역을 포함한다. 18세기에 신장 지역이 청나라에 병합되면서 톈산산맥을 기준으로 중국 쪽을 ‘동튀르키스탄’이라고 부르고 그때까지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던 서부를 ‘서튀르키스탄’으로 부르게 되었다. 1991년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은 튀르크에서 카자흐, 우즈베크, 키르기즈, 타지크, 투르크멘 등 새로운 민족국가를 만들었다.
대중앙아시아를 특징짓는 광활한 초원은 동서양 문화와 산물의 교차로이자, 다양한 민족의 이동과 성쇠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공간이다. 이 광활한 초원에서 수많은 민족 간 이동이 이루어졌는데, 때로는 비단과 보석의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때로는 불교와 이슬람 등 새로운 문화와 문명이 전파되고 흡수되었다. 동과 서, 남과 북으로 연결되는 중앙아시아의 지리는 축복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특징짓는 것은 전쟁이다. 강대국의 교차로이자 중립지대인 이 지역은 중국과 아랍, 러시아와 영국, 심지어 미국까지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평화보다는 전쟁이 항상 더 어울렸다.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티무르의 약탈전쟁, 청 제국의 준가르 말살전쟁,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전쟁, 영국, 소련, 그리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났다. 강력한 제국의 경계지대에 놓인 중앙아시아의 지리는 저주이다.
동시에 중앙아시아는 제국의 요람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국가는 제국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고 있다. 사산왕조, 아바스칼리파국, 셀주크제국, 몽골제국, 티무르제국, 준가르제국 등은 민족국가의 형성 없이 그대로 제국으로 발전했다. 제국의 형성은 전쟁 과정이다. 한반도 또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경계지대로 20세기까지도 미국과 소련이 싸우는 열강의 전쟁터였다. 중앙아시아 또한 열강의 경쟁 무대였지만 그 자체에서 엄청난 제국도 발전시켰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 강성한 세력이 일어나면 지리는 약점이 아니라 축복이 된다. 지리란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 어떤 지역의 불안정성과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