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소설가 추천! “여기 이 소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하고 싶다.”
르노도상,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수상 작가
다니엘 살나브 소설 국내 첫 번역 출간!
끝을 향해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띄우는
아련하게 식어버린 시절, ‘추운 봄’의 이야기들
여기 이 소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하고 싶다. 아름답고 허망하고 슬퍼서 읽고 나면 누구든 깊은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건 마치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수은 방울”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심정과 비슷하다. 다니엘 살나브는 냉혹한 고수의 칼 놀림으로, 표면에 수은 방울이 점점이 맺힌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쓱 잘라 우리 앞에 내민다. 케이크의 단면은 무심하고 단정하다. 그러나 입안에 넣는 순간 놀라울 만큼 깊고 진한 맛이 가득 퍼진다.
_정이현(소설가)
발표된 지 사십여 년이 지났으나 다니엘 살나브가 천착했던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할 것이라 생각된다. 독자 여러분은 오감에 호소하는 요리가 줄지어 나오는 프랑스 정식 식사를 음미하듯 천천히 꼭꼭 씹으며 열한 편의 접시를 모두 즐기시기를 기대한다.
_이재룡(문학평론가,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다섯 번째 책. 『추운 봄』은 재출간 전 시리즈에서 소개된 적 없는 신간으로, 다니엘 살나브의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르노도상,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등 프랑스에서 저명한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뚜렷한 이력을 남겨온 다니엘 살나브는 2011년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어, 페미나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의 심사 위원으로 참여하며 프랑스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2023년에는 수필집 『쥐스티스 거리』를 출간했다.
『추운 봄』은 열한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각자의 삶의 ‘순간’에 사로잡혀 있다. 독거노인 ‘그녀’와 안부를 확인하려고 온 ‘우리’의 이어지지 않는 대화(「방문」), 요양원에 오지 않는 아들에게 쓴 어머니의 시시콜콜한 편지(「편지」), 늙은 강아지의 죽음을 수습하며 떠오른 출가한 아들과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회상(「영원히 명랑한」)…… 『추운 봄』의 이야기들은 큰 사건 없이 찰나의 순간에 끈질기게 눌러앉아 삶과 죽음, 시간과 기억에 관하여 생각하며 가늠할 수 없는 삶의 총체를 들여다보게 한다.
속절없이 흘러오는 죽음 앞에서
희망과 약속은 무엇일 수 있을까
살아가는 데에는 희망뿐 아니라 그것을 단념하는 일 또한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져가는 ‘실패한 희망’은 “되찾을 수 없는 기억, 향기나 희미한 여운으로만 남아” 불편한 침묵이 되어 우리의 현재를 맴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의 결과로 “지금의 내가 된 그 아이,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던 그 누구”만이 돌아가지도 나아가지도 못하고 멈춰 선 채 흘러가는 삶을 관망할 뿐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똑같은 구름 떼를 보”면서.
“계속 살아서 무슨 소용 있고 왜 당장 모든 것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젊음이라 일컬어지던 때에 시간과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들은, 필연적 결과라기에는 허술한 자신의 현재에 제대로 붙박히지 못한 채 어제와 내일 사이를 어정쩡하게 부유한다. 그들에게 “광막한 공간, 낯선 도시들, 결코 가보지 못할 숲”처럼 “먼 데를 환기시키는” 기대와 희망은 “대처할 수 없는 고약한 명령”에 불과하고, 그들에게는 “생의 충동”마저도 “일어나자마자 힘없이 가라앉”고 마는 덧없는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명백한 진실을 수긍하고 모든 저항의 의욕을 상실한 듯” 우리는 또 현재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통도 행복도 희미해진 과거를 아련히 떠올리며 가다가도 다시 현재에 붙잡혀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어” 하고 주저앉고 마는, 이 과정의 무수한 반복이야말로 저물어가는 인간 생애의 전말이 아닐까. 시간은 또다시 무정하게 우리를 떠밀고, 우리는 결국 “잠깐 생기가 돌았던” 지난 세월의 회고를 뒤로하고 나아간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어쨌거나 모두가 죽어야만 하는데” 하고 씁쓸한 체념을 읊조리며.
정이현 소설가의 말처럼 “아름다움의 뒷면에는 필연적으로 허망함과 슬픔이 배어 있다.” 젊음이든 추억이든, 아름다운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함께 나눴던 예전의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어느 날 그 길에서 고독한 죽음을 만날 것이다.” 아름답고 잔잔한 삶이라는 물결 아래 그러한 상실의 예감이 고개를 들 때, 삶의 모든 순간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이들의 절대 고독을 넘어서는 그 ‘생의 의미’야말로, 다니엘 살나브가 이 열한 편의 소설을 통해 발견하고 싶었던 답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