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이 청산가리의 천 배에 이르는 테트로도톡신 중독사
범인은 의식이 살아 있는 피해자들에게 대체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사건이 발생하자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아마네가 속한 무사시노서의 형사 조직범죄 대책과는 경시청 수사1과와 합동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테트로도톡신은 독성이 청산가리의 천 배가 넘는 맹독으로 섭취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마비되다가 결국 호흡 곤란으로 질식하게 된다. 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뚜렷한 것이 특징으로, 어떻게 보면 매우 잔혹한 살해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장 탐문 수사에서도 범인을 특정할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가운데 아마네는 범인이 써놓은 ‘1/TTX’라는 암호에 대해 억측에 가까운 추리를 내놓는다. ‘TTX’라는 기호가 복어의 네 개의 이빨을 뜻하는 학명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1’은 피해자 네 명 중 한 명을 의미할지 모른다는 추론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또다시 테트로도톡신에 의한 살인. ‘2/TTX’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보아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이 틀림없다.
첫 번째 피해자는 35세의 파티시에. 두 번째 피해자는 43세의 건축사무소 운영자. 둘 사이에는 기치조지가 생활반경이라는 점 외에는 어떤 접점도 없다. 첫 번째 피해자는 피에로 분장을 한 상태로 공원 벤치에 방치되었는데, 시민들은 그것이 퍼포먼스인 줄 알고 지나쳤고 피해자는 죽음에 이르렀다. 두 번째 피해자는 이노카시라 자연문화원에서 테이블에 엎드린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저 낮잠을 잔다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범인은 왜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단지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런 귀찮고 위험한 방법을 취할까. 마지막까지 의식이 남아 있는 피해자들에게 범인은 대체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그러는 사이 세 번째 살인이 일어난다. 3/TTX. 이번 피해자 역시 인적이 많은 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범인이 남긴 단서도, 다른 피해자와의 공통점도 없다. 피해자를 선택한 이유, 살아 있는 동안 방치한 이유,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을 선택한 이유,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다. 그때 아마네는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세 피해자의 공통분모를 포착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슬픈 사건과 함께.
아마네를 강인한 경찰로 키워준,
차마 잊을 수 없는 소녀 유괴살해사건
‘레이나 유괴살해사건’. 아마네에게 그 이름은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2년 전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유괴되어 1년 후 살해된 비참한 사건은 범인의 자살로 종결되었다. 유괴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수사에 참여한 아마네는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한 레이나에게 자연스레 여동생 같은 감정을 품게 되었고, 구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되새기며 수사에 임했다. 레이나의 집에도 여러 번 찾아갔다. 정보 수집과 전달이 주된 임무였지만, 나중에는 피해자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에 더 비중을 두었다.
당시 아마네는 공개수사를 하자고 제일 먼저 제안했다. 몸값이 목적인 유괴가 아니라 돌발적이고 무계획적인 범행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도부는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범인을 궁지에 몰 거라는 신중론을 내세우며 아마네의 의견을 묵살했고, 결국 초동수사에 실패하고 범인의 행적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실낱같은 기대는 무참히 배신당했고 소녀는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아마네는 레이나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알아낸 사실은 발언하고, 절대 타협 없이 수사에 임한다는 과제를 자기 자신에게 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매의 눈’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마네의 마음 한쪽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는 그 사건이 복어 독 연쇄살인으로 인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피해자에 대한 아마네의 예측 역시 빗나가지 않는다.
예측불허의 반전과 몰입감
무관심과 선입견,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회에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
독자가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못 멈추기를 바랄 만큼 가독성을 중시한다는 가지나가 마사시는 이 소설에서도 직설적인 문장으로 영상을 보여주듯 독자에게 시라타카 아마네의 활약을 선사한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 등 여러 요소를 다루면서도 이야기가 타이트하게 전개되는 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독자를 배려하는 문장 덕분일 것이다. 마지막 ‘4/TTX’에서 휘몰아치는 반전은 최고조의 몰입감을 안겨주며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관심과 선입견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남의 일에 관여하기 싫다는 심리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이다. 그런 한편으로 쓸데없이 관심을 끌기 위해 배려 없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말과 행동이 남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도 모르고서.
반면 이러한 사람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시라타카 아마네다. ‘정의의 사도는 약자를 구하고 악당을 쓰러뜨린다’는 생각으로 경찰관이 된 아마네는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극한까지 능력을 키운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수사에 임할 때는 타협하지 않는 신념, 그리고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아마네는 사건을 해결로 이끈다.
과학수사가 중시되는 요즘은 날카로운 감으로 ‘억측’을 쏟아내는 아마네 같은 경찰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별난 시각이 사건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하여 해결의 물꼬를 트는 경우를 우리는 현실에서도 종종 만난다. 거기에 강단 있고 사명감이 투철한 경찰이라면 말해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