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지 않으려고 선택한 삶인데 끼니를 대충 때울 수는 없지.’
그래픽과 코드로 울고 웃는
게임 회사 1n년 차 직장인의 일상 기록
게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게임 만드는 일 하면 하고 싶은 만큼 실컷 게임을 할 수 있어서 좋겠어요.”
물론 게임은 실컷 할 수 있겠지만, 이 물음에서 ‘하고 싶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일’ 모드로 전환했을 때는 그저 재미로, 자기 의지만큼 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사람이 그저 즐기려고 하는 ‘게임’을 일로 하는 한 여자 직장인의 일상을 차곡차곡 담아낸 기록이다. 여느 월급쟁이들이 그렇듯, 저자도 먹고살기 위해 회사에 다닌다. 게임 서버 점검 시간 전에 출근하려고 새카만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텅 빈 정류장에서 오돌오돌 떨었던 때가 있는가 하면, 게임의 재미를 느낄 새도 없이 특정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매출 전망, 유저와 회사 모두를 만족하게 할 만한 상품 구성 따위를 고민하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런데도 신태주 작가가 삶을 내보이는 방식이 그저 고단하거나 팍팍하지만은 않다.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에 남은 재료 뭐 없는지 뒤적거리고 집밥 한 끼는 손수 만들어 먹는 것으로 삶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아날로그적 삶을 살아간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천천히 바라보고 곱씹으며 그만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그이가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변화와 효율이 최우선인 세상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삶을 가만히 응시하며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법을 엿볼 수 있다.
삶의 단짠단짠이 모두 녹아 있는
공감백배 인생 레시피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음식들은 일상에서 늘 봐 와서 흔하디흔한 것들이다. 특별한 재료나 요리 방법으로 만들지 않는데도 이 음식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음식을 매개로 신태주 작가가 일상에서 마주한 사람들 이야기 덕분일 것이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긴장 관계에 놓인 부서 사람이 소싯적 같은 꿈을 꾸었던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살가운 데라고는 없는 사람이 점심시간이면 여지 없이 밥 먹으러 같이 가자는 말을 건네는 모습에서 어떤 상냥함을 발견했을 때, 적당한 호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먹을 것을 나눈다. 낡은 트럭에서 꽃모종을 파는 노인의 부지런함이나 코로나19 이후 문을 닫은 단골 가게를 마주할 때도 음식이 하나둘 떠오른다.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이야기는 특별한 것 없는 하루하루다. 하지만 30대 후반 여자로서, 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책이라는 그릇에 오롯이 담겨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 주면 좋겠다고’ 글 쓰는 내내 생각한 저자의 바람대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주는 공감과 따뜻한 위로를 받길 바란다.
팍팍한 일상에 감칠맛을 더하다
먹고 사는 집밥 요리
저자는 아무리 바쁜 때라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레토르트 음식을 데워 먹기보다는 냉장고에 남은 자투리 채소가 없는지를 뒤져 본다. 뭐든지 효율적으로 빨리하라고 서로 몰고 몰리는 세상에 휩쓸릴 수밖에 없지만, 먹는 일에 있어서는 자기 손으로 직접 한 끼를 만드는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것이다. 게임 서버 점검 날 바쁜 점심시간을 짬 내서 만드는 마파풍 두부 덮밥, 유저 커뮤니티를 관리할 때 만난 유저들을 떠올리며 부쳐 낸 감자전, 우연히 마주친 직장 동료를 마주치고 밤늦게까지 함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 뼈해장국, 재택근무를 하면서 점점 더 쓰지 않게 된 몸을 개탄하며 만드는 양배추 롤까지, 이 책은 저자가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 떠올리거나 먹은 음식들을 레시피로 담았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법인 만큼, 바쁘고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라도 이 책을 다 읽을 즈음이면 한 번쯤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뒤적거리며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다. 특히 팍팍하고 치열한 하루하루를 쳇바퀴 돌듯 버텨 내는 직장인에게 탈탈 털린 영혼을 채워 줄 수 있는 한 끼 식사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