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뻔한 희곡, 그 무수한 변주
사람들은 늘 사랑의 시작을 궁금해하지만, 저자 최여정은 지나간 사랑의 끝을 쫓으며 글을 썼다. 사랑을 이야기하기로 하자 당연한 듯이 연극이 따라 나왔다. ‘찐사랑’은 바로 나야, 라는 듯이. 같은 희곡으로 같은 배우가 같은 무대에 서도 매일의 연극이 다르듯이, 사랑도 그렇다. 고전 희곡이 영원히 그대로일 것 같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무대와 연출에 따라 변하듯 사랑도 그렇다. 저자는 이별의 아픈 시간을 겪으며 연극 속에서 하나씩 사랑을 길어 올렸다. 사랑과 헤어짐, 결혼과 이혼, 기다림과 외로움. 아프고 시린 사랑도, 사랑의 사랑했던 친구도, 아버지와 엄마도 연극을 통해 떠올리며 바라본다. 사랑으로 방황했던 경험이 있는 이에게 사랑은 달콤한 행복의 약속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용기를 내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는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지적이고 예술적인 ‘풀코스의 파인다이닝’
·가슴이나 머리로 짜내지 않고 배로 써내려간 듯한 글맛
공연·문화 기획자이자 마케터, 경기도문화의전당 공채 1기로 시작해 대학로 연극열전을 거쳐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로 자리를 옮겨가며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쌓아온 탄탄한 경험과 지식이 책 속에서 화려한 성찬으로 펼쳐진다. 지적인 사유와 예술적 통찰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 권의 책과 고정 칼럼으로 다져진 최여정의 글맛이 쉬지 않고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시냇물이 흐르듯 빠르다가 느려지고 굽었다가 다시 쏟아지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와 함께 연극뿐 아니라 책과 영화, 무대와 작가와 배우를 오가며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다시 사랑하게 된다. 저자는 때로는 냉소적이다가 때로는 연민하고 안타까워한다. 독자와의 거리 없이 훅 다가서며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펼쳐두었던 감정을 매만지며 정돈한다.
· 아홉 편의 연극과 전하는 위로와 용기
이 책에는 차례로 제시되는 아홉 편의 연극보다 더 많은 작품이, 그 작품보다 더 많은 인생과 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서투른 십 대의 사랑도, 뜨거운 열정과 체념, 격정과 분노,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부모의 모습도, 나이든 부부의 익숙한 편안함도 우리의 모습이다. 지나간 사랑에 혼란스러워하며 글을 시작한 저자는 이별을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감정을 정리한다. 연극 속 인생이 다양하듯, 연극보다도 더 가열차게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괜찮아, 라고 말한다.
이제 나는 용기를 낸다. 사랑의 시작에 귀 기울일 용기, 다채로운 사랑 앞에서 등 돌리지 않을 용기, 사랑이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완성된다는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