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두려운 나와
죽는 걸 기대하고 있는 너의 만남,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운명 같은 이야기
고1 겨울, 하야사카 아키토는 심장병으로 시한부 1년을 선고받는다. 갑작스레 닥친 불운에 절망이라는 두 글자만이 아키토의 머릿속을 휘저었고, 할머니가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만약 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면 감추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달라며 죽음을 거침없이 대했던 과거가 후회됐다. 자신이 상황에 처하고 보니 듣지 않는 게 나았고, 모르는 게 좋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던 아키토는 어느 날,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하루나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반년뿐인데도 초연한 태도로 오히려 죽는 게 기대된다고 말하며 천국을 그리는 소녀 하루나. 하루나는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절망하거나 모든 일을 내팽개치지 않았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이래야 해, 라며 비관에 빠져 있던 아키토는 그런 하루나의 모습에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다른 태도로 받아들이게 되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죽는 게 두려운 아키토와 죽는 걸 기대하고 있는 하루나의 만남은 그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에 주어진 기적의 시작이었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겠지만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헤어짐을 알면서도 퇴색되지 않는 마음
아키토는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인데도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하루나를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하루나는 누구보다 여리고 외로움을 잘 타는 데다 울기도 잘하는 평범한 소녀였다. 거기다 마지막에는 필사적으로 병과 싸우며 하루라도 아니, 일분일초라도 더 살아낼 다짐을 하는 용감한 하루나의 모습에 아키토는 차마 자신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고백을 하지 못했다.
정해진 결말로 치닫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걸 단념했던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만나 애틋하고 눈물 나지만, 사랑스럽고 따스한 마음을 주고받는다. 아키토와 하루나는 분명, 지금 당장 심장이 멈춰도 좋을 만큼 소중한 사랑을 했다. 그들은 이 사랑을 ‘시한부의 사랑’이라고 불렀다.
눈부신 청춘, 영원한 작별,
우리의 사랑은 내가 죽거나
네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하루나와 아키토는 서로의 마음을 거베라 꽃을 통해 고백했다. 거베라는 봄과 가을에 한 번씩 피는 꽃으로, 이름이 봄을 의미하는 하루나와 가을을 의미하는 아키토가 한 번씩 피워내는 꽃으로 볼 수도 있다. 하루나와 아키토가 서로에게 보내는 거베라의 달라지는 꽃말을 따라 비밀스러운 그들의 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꽃말을 통해 간접적이지만 알아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을 고백했던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과연 서로에게 온전히 전해졌을까?
생명은 짧지만 만남은 길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희망을 잃고 세상을 포기하던 아키토가 우연히 만난 하루나로 인해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이렇게 그들은 우리에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준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남녀와 이들이 죽고 남겨진 사람의 뒷이야기가 담긴 독특한 구성이 신선하고 돋보이는 이 책은 짝사랑, 가벼운 사랑, 미련하고 찌질한 사랑, 가족애 등과 같은 다양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며 청춘이 한창인 이들에게 감히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