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 부분 ‘창세신화’ 편에서는 세계에 대한 창족 사람들의 원초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광대한 천지는 창족인이 신앙하는 천신 아뿌취꺼와 그의 아내 홍만시가 힘을 합쳐 만든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표현은 세계 각 민족들에게서 모두 비슷하게 나타난다. 중국 한족의 신화 중에도 “반고가 천지를 개벽”하고, “여와가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든다”는 창세신화가 존재하는데, 이런 신화에서 남자와 여자는 인간 사회의 음과 양의 근본적 소재이다. 창족과 한족 창세신화는 두 민족의 혈족, 인척에 대한 동일한 인식을 투사하기도 한다.
또 창족 신화에는 개가 자주 등장하는데, 창족 사람들에게 있어서 개는 옛날 유목시대나 현재 경작시대나 모두 양치기와 사냥의 좋은 조력자, 생활의 좋은 동반자로, 그 지위가 상당히 중요하다. 개는 창족 가정의 상징이기도 한데 이는 마치 한족 가정에서 돼지를 중요시하는 것과 같다. 내가 어렸을 때 매번 설날이 되면 부모님은 식사 전에 먼저 개 밥그릇에 밥과 고기를 담아 줘서 개가 고기를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밥을 먼저 먹으면 수확이 적으리라고 예측하시던 기억이 난다.
또한 양각화(羊角花)는 소년 시절 어머니를 따라 양치기를 하면서 늘 보던 꽃으로서 오늘날 민강 상류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학명은 고산두견화이고 일반적으로 해발 2~3,000미터의 관목수풀 속에서나 고산 초원 변두리에서 자라며, 매년 늦봄과 초여름쯤이면 분홍색, 노란색, 흰색의 꽃들이 온 산에 가득 피어난다. 이렇듯 오래된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가 살아온 역사 문맥과 현실 생활과 민속 속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중국 창족 신화와 전설」의 자연신화, 홍수신화, 영웅신화, 민속전설, 인물전설들은 어느 것 하나도 창족이라는 민족의 역사적 심성, 원시적 인식, 문화적 인자, 개체적 전승 등의 요소가 공동으로 작용하여 시시각각 변화와 발전을 거치면서 대를 이어 전승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이런 신화의 핵심은 창족의 민족 신앙, 민족 정신과 민족 의지에 있다. 오늘날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신화와 전설의 발생과 전승의 근원도 분명히 추적하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는 우선 이런 신화 전설이 보여주는 창족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사고 방식, 사회적 암시와 관습 및 습관, 세대간의 전승 측면에서, 다음은 민간인 전파자 개개인의 사회적 역할, 개인의 성격, 역사적 이해 측면에서, 세 번째는 청중의 입장과 기대, 수용과 반응 측면에서 이러한 신화와 전설을 이해하고, 감상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창족의 신화와 전설은 그 자체로 독특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민족, 나아가서는 전 세계 많은 민족의 신화 전설과 마찬가지로 천지만물, 집단 신앙, 사회 구조, 문화 풍속 등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과 이해를 담고 있다.
이 번역서는 중국 소수민족의 신화와 전설을 이해하고, 상호 비교를 통해 한국의 신화와 전설을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창족 문화와 신화전설 이해에도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