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여동생 요시모토 바나나, 사상가 아버지 요시모토 타카아키
일러스트레이터 하루노 요이코가 그린 고양이와의 생애
“이 책은 요시모토 가문에 대한 마지막 8년간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도쿄 코마고메에 자리한 요시모토 가문의 툇마루는 언제라도 고양이가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와, 사상가 아버지 요시모토 타카아키, 어머니 카즈코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요시모토 가문이 오랜 세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온 집이다. 아버지가 애인처럼 아끼는 집고양이 프란시스코, 마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시로미를 제외한 바깥 고양이들도 이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혈통이 있거나 몸에 탈이 없는 튼튼한 고양이는 드물고, 대부분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려지거나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고양이들뿐이다. 갈 곳 없는 고양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 수는 있지만, 각 고양이들의 개성과 삶을 존중하여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 하루노 요이코는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도시의 고양이들을 보듬으면서도, 고양이의 기본 습성인 ‘자유’를 존중해 ‘그럼에도 외출하는 고양이’를 기꺼이 배웅한다. 이 책은 고양이를 통해 한 인간이 성장하게 되는 성장담이자, 요시모토 가문과 고양이가 함께한 일상을 그린 애달프고도 씩씩한 일러스트 에세이다.
고양이계의 테레사 수녀
익숙한 죽음을 경계하기 위해 깊은 애정을 보이다
달이 중천에 빛나던 여름 늦은 밤, 하루노는 새하얀 아기고양이를 주웠다. 아기고양이는 꼬리와 연결된 척수를 다쳐서 스스로 배설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누군가가 옆에서 돌봐주지 않으면 세균감염, 요독증, 신부전과 같은 질병으로 금방이라도 죽게 될 장애를 가진 작은 생명을 눈앞에 두고 고민하던 그는 이내 이 아기고양이, 시로미를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동물병원을 오가며 시로미의 치료에 전념한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떠밀리듯이 하루노와 버려진 고양이 시로미와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후 저자는 8년에 걸쳐 고양이 잡지 <네코비요리>에 ‘시로미 간병일지’를 연재했다. 시로미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간호, 자신의 유방암, 다른 길냥이들과의 애정 어린 일상을 낱낱이 기록하며 생명이란, 삶이란 무엇인가를 배워나간다. 부모의 죽음과 잇따른 고양이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모든 생물은 죽을 때 예외 없이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디에서 죽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하루노만의 ‘죽음에 대한 철학’ 또한 쌓아나간다. 동생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고양이들을 돌보는 하루노를 두고 ‘고양이계의 마더 테레사’라고 일컬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바깥 고양이들
한해살이풀처럼 반복해서 사라지는 생명에게 전하는 안녕
바깥에 사는 고양이들을 극진히 돌보는 그를 향한 이웃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돌보던 고양이들이 독을 탄 먹이를 먹고 죽는가 하면, 새로이 태어난 새끼들은 아무리 돌봐줘도 한해살이풀처럼 반복해서 사라지기 일쑤이다. 감기 하나에도 쉽게 목숨을 잃고, 고양이 에이즈(FIV)나 전염성 백혈병(FeLV)으로 조용히 사그라지는 생명을 지켜보면서 하루노는 몇 번의 허무를 경험한다. 무엇 때문에 고생해서 잡아다가 짧은 일생에 무섭고 아픈 경험을 시킨 것인지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그 많던 바깥 고양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루노는 결국 길고양이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작전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중성화를 시키면 길고양이 숫자는 반드시 줄어든다고 이웃들을 설득한다. ‘걷고 싶어. 먹고 싶어. 살고 싶어’ 그런 의지를 가진 것만으로도, 어떤 장애를 가졌든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든 오직 오늘을 살아나가고 있는 생명임을 믿기 때문이다.
요시모토 타카아키는 “옛날의 고양이들은 좀 더 느긋하고 태평한 생물이었는데 최근엔 다들 긴장하며 살고 도망친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인간 옆에 사는 고양이들은 결국 현대 인간사회의 관용 없음이나 숨막힘을 투영하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고양이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럽다.
예정된 이별이 두렵고 바깥이 위험하더라도 고양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말릴 수 없다는 하루노는 앞으로도 고양이들에게 툇마루를 열어두겠다는 담담한 고백을 끝으로 연재를 마쳤다. 짧은 생을 사는 바깥 고양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스레 생에 대한 근본적인 의의를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