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남궁억(황성신문초대사장)

남궁억(황성신문초대사장)

  • 정진석
  • |
  • 기파랑
  • |
  • 2014-04-01 출간
  • |
  • 192페이지
  • |
  • ISBN 9788965238898
★★★★★ 평점(10/10) | 리뷰(1)
판매가

13,500원

즉시할인가

12,150

카드할인

0원(즉시할인 0%)

적립금

675원 적립(5%적립)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추가혜택

네이버페이 무조건 1%적립+ 추가 1%적립

수량
+ -
총주문금액
12,150

이 상품은 품절된 상품입니다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목차

제1장; 영어 공부, 고종의 통역
제2장; 《황성신문》 초대 사장
제3장; 세 차례의 필화
제4장; 잡지 발행과 교육
제5장; 역사를 가르치고 무궁화를 심으며

도서소개

언론인이자 정치가, 교육가, 독립운동가 남궁억의 생애를 돌아본다. 한말에서 일제기간에 걸치는 전 생애를 구국, 사회계몽, 민족 부활운동에 헌신해온 그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언론인이자 정치가, 교육가, 독립운동가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선생은 1863년 12월 27일 서울 왜송동(倭松洞: 貞洞)에서 태어나 20세까지는 한문을 공부하다가 1883년 재동(齋洞)에 자리 잡은 관립 영어학숙에 입학하여 이듬해 졸업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영어를 배운 사람이었다. 영어학숙은 통리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동문학(同文學)에 소속된 최초의 외국어학교였다. 선생은 한말에서 일제기간에 걸치는 전 생애를 구국, 사회계몽, 민족 부활운동에 헌신한 언론인이자 정치가, 교육가,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조선의 역사를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저술한 역사학자인 동시에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민의 정서를 함양할 여러 편의 노래 가사를 지은 작사가이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에 입교하여 한국적인 찬송가를 작사하고, 서양 음악에 번안한 가사를 지어 시련에 처한 민족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했다.

국한문 혼용의 《황성신문》

남궁억 선생은 1898년 9월 5일 《황성신문》이 창간될 때 초대 사장으로 선출되면서 신문발행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였다. 1898년에는 언론사(言論史)를 장식하는 한말의 대표적 민족지 3개가 새롭게 창간되었다. 서재필이 1896년 4월 7일에 《독립신문》을 창간한 이후인 1898년 1월 1일에는 배재학당 학생회인 협성회(協成會)가 주간신문 《협셩회회보》를 창간했다가 4월 9일부터는 제호를 《매일신문》으로 바꾸어 일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3월 2일에는 주 2회 발행의 《경성신문》(京城新聞)이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제호를 《대한황성신문》으로 바꾸었다가 《황성신문》(皇城新聞)으로 다시 한 번 제호를 바꾸면서 일간 발행으로 발전시켰다.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 신문이었다. 《황성신문》이 국한문을 혼용하면서부터 신문은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의 두 종류로 양분되었다. 국한문을 혼용한 《황성신문》의 독자는 중류 이상의 지식층이었고, 한글전용의 《제국신문》은 서민층과 부녀자들이 많이 읽었다. 그래서 《황성신문》을 수(雄)신문, 《제국신문》을 암(雌)신문으로 불렀다.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

남궁억 선생은 《황성신문》의 초대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초창기 한국 언론의 기틀을 잡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몇 차례의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된 일도 있었으나 의연히 대처하여 언론의 전통 수립에 시범적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1933년 12월의 경찰 신문(訊問)에서 토로했던 아래와 같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눈을 감는 순간까지 지니고 있었다.
“조선민족으로서 민족애 정신을 가지고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여튼 나의 죄로 벌을 받더라도 죽어도 조금도 아까울 것은 없으나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을 그대로 두고 내가 죽는다는 것만이 무엇보다도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조선민족의 비참한 실정을 말한다면 온몸이 전율하여 견딜 수가 없으니 그 점만은 생각해주기 바란다. 조선민족을 위한 것이라면 지금 죽어도 좋으니 불쌍한 민족만 구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서재필기념회 선정 ‘올해의 민족 언론인’

남궁억 선생은 1918년 12월 선조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 서면 보리울[모곡牟谷]로 낙향하였다. 그곳에서 선생은 교회와 학교를 세운 뒤 무궁화를 심어 민족애를 고취하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가르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다가 1939년 4월 5일 영면했다. 정부는 1977년 12월 13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고, 2004년 6월 29일에는 모곡에 ‘한서 남궁억기념관’이 개관되었다.
올해 서거 75주년을 맞아 서재필기념회(이사장 안병훈)는 ‘올해의 민족 언론인’으로 남궁억 선생을 선정, 언론회관 20층에 부조상(浮彫像)을 헌정하는 등 그 업적을 언론계와 일반에 널리 알리는 행사를 4월 9일 언론회관에서 가질 예정이다.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