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사랑으로 새기는 할머니와 우주, 인간의 생장>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사람의 성품과 그 사람이 성장한 역사·문화적 배경, 그 사람의 몸에 담긴 별과 지구의 역사,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미생물들, 그리고 오직 그 사람만의 독특한 체취들이다. 그것을 진솔하게 통찰하다 보면 개인의 이야기는 어느새 삶과 인류의 문화사로 확장되어 버린다.
저자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겪은 그간의 에피소드에 인문·생물학적 해설을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낸 생장 에세이이다. 하나씩 끌어낸 기억의 단편들은 삶과 생장이라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고, 글 중간중간에는 해설을 덧붙였다. 해설은 직전의 에피소드와 연관된 단상이면서, 나아가 할머니라는 한 존재를 매개로 작가가 체득한 삶과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 해석이다. 그 해석은 끝없는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그 폭과 깊이는 다채롭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역사적 생물로 할머니를 그려내는 저자의 인식은 우리의 가치와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 그 넓힌 지평을 통해 우리는 할머니의 존재를 우리 가슴에 별과 사랑으로 새기게 되고, 한 생장체로서 자신과 우주를 마주하게 된다.
<할머니의 기억으로 복기한 세상과 인간의 삶>
한국 사회는 한 세대를 거치기도 전에 문화·경제적으로 탈바꿈했고, 현재 할머니들은 유례없이 큰 폭으로 변화한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했다. 할머니는 한국사회의 식민지와 전쟁, 근대화라는 격변기를 살아낸 세대였고, 아이를 키웠던 어머니였고, 늙어가는 몸을 지닌 존재였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자랐고, 전쟁 후에 자녀를 길렀고, 근대 산업화 시기에 할머니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가파른 변동의 언덕을 올라간 세대가 또 있을까?
그 할머니들의 삶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지금, 저자는 모진 노동과 작은 기쁨, 때때로 찾아오는 격한 슬픔이 뒤엉킨 삶을 살아내셨던 할머니를 통해 바라보았던 세상을 복기했다. 그 세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한 개인의 개인사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의 힘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글이 하나의 감각기관처럼 일하며 할머니에서 나아가 우주마저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글의 힘에 기대어 각자의 ‘할머니’를 불러일으키게 하고 우주마저 만나게 한다.
<존재를 이어주고 하나로 연결되는 할머니와 사랑>
“시간이 가면 바뀌는 것들이 있다. 후임자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영역이 줄어들고, 또 넘겨줘야 하는 것들이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우리의 물리적인 몸 그 자체이다. 언젠가 몸 자체를 후임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저자의 이 말처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복’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 피어나는 꽃이 다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바로 ‘사랑’에 있다. 할머니들이 격변의 세기를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다. 할머니 이야기는 곧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랑은 할머니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모든 존재를 탄생시켰고, 존재와 존재를 잇는 정신적 탯줄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이 모든 물질이 그저 있는 그대로 있고자 하는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저자의 이 질문 하나로도 우리는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틀에 박힌 사랑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각별한 할머니라는 존재가 각인시킨 사랑, 이 책으로 그 사랑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