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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라는 근대

조선영화라는 근대

  • 정종화
  • |
  • 박이정
  • |
  • 2020-04-27 출간
  • |
  • 472페이지
  • |
  • 180 X 235 X 34 mm /897g
  • |
  • ISBN 9791158485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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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1901년~1945년까지의 우리나라 영화사를 정리
이 책은 1901년에서 1945년까지 한국의 근대 영화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처음 한반도에 영화 매체가 소개된 1901년을 시작으로, 조선영화의 역사를 크게 초창기(1919~1922년), 무성영화 전기(1923~1925년), 무성영화 후기(1926~1934년), 발성영화기(1935~1939년), 전시체제기(1940~1945년)로 구분하고 각 시기별로 각각 제작 환경/영화 담론/영화인과 작품에 관해 입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대한제국기와 일본에 의해 주권이 찬탈당한 일제강점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제작된 영화는 일반적으로 친일 혹은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이해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식민지 조선과 일제, 그리고 조선영화와 일본영화와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그동안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부분들을 역사적으로 복원해내는 것에 중점을 둔다.

교섭과 경합으로 보는 조선영화 역사
이 책의 저자는 ‘조선영화’가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제작은 무엇보다 자본과 기술이 수반되어야 하는 작업이므로 일제시기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조선영화인들이 식민 당국, 재조선 일본인 그리고 일본영화계를 아우르는 각 주체들과 교섭하고 경합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식민지 조선영화계는 조선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그 면면이 조선인만으로 구성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조선영화 역시 조선인만의 결과가 아닌 일본영화인과 협업한 결과로서 존재했다. 식민지 사회 구조와 상업영화의 제작 논리를 고려할 때 명백하지만 그동안 애써 인식하지 않았던 사실(史實)이다. 조선영화는 이를 한국영화사라는 일국(一國)의 영화사로 소환해 어떻게든 그 범위 안에서 서술하려는 노력보다는, ‘왜 한국영화가 아닌가’라는 존재론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성찰할 때 더 분명히 드러나는 존재이다.

해방 이전의 영화를 조선영화라고 명명한 이유
일제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에 대해 ‘한국영화’라는 이름이 아닌 ‘조선영화’라고 명칭한 것은 다음과 같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영화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4년 개봉한 〈장화홍련전〉 신문 광고에서인데, 이때부터 조선영화는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참가하고 주도적으로 만든 영화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의 식민지 경험은 매우 불행한 역사임에 분명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조선인들은 영화를 만들었고, 또 관객들은 그들 자신의 모습과 풍경이 등장하는 조선영화를 지지했다. 조선영화라는 명명은 식민지 사람들이 개척했던 주체적인 근대, 그 자체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일군 근대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보여준다. 식민지 조선영화(Joseon cinema)는 조선인이 만들어간 근대의 가장 첨예한 장이었다.

식민지 조일(朝日)영화인의 교류사
식민지 조선영화계는 조선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조선인들로만 구성될 수 없었다. 초창기 조선영화 장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재조선 일본인의 흥행 자본을 이용하고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 촬영기사의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에서 출발했다. 엄혹한 일제 치하였지만 조선영화는 만들어졌고, 기본적으로 상업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작업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상호 간의 협업은 필연적이었다. 특히 검열 등 일제 당국과 협상해야 할 문제가 발생하면 조선영화계의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해결해야 했다. 조선영화와 일본영화 그리고 일제 당국이 함께 만들어낸 식민지 영화계의 구도는 서구와 일본의 것이 혼종된 한국식 근대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목차


책머리에

# 01. 조선영화란 무엇인가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조선영화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근대
일본영화·일본영화인과의 관계
조선영화 발굴과 연구 동향
이 책의 방향
# 02. 활동사진의 도래
첫 활동사진 공개
극장가 형성
일본인 주도의 영화 흥행
조선인 영화관 등장
무성영화의 목소리, 변사
# 03. 조선영화의 출발(1919~1922년)
1. 서구 연속영화의 유행
2. 조선인 연쇄극 제작
일본에서 기원한 연쇄극
단성사 주도의 연쇄극 제작
3. ‘영화적인’ 연쇄극
영화적(cinematic) 실천으로서의 연쇄극
서구 활극의 미장센과 일본 신파 서사의 결합
# 04. 무성영화의 제작(1923~1925년)
1. 신파영화의 시대
초기 무성영화계
첫 상업극영화
2. 재조선 일본인 제작사
동아문화협회
부산 조선키네마주식회사
3. 조선영화인의 형성
4. 영화극으로서의 표현방법
무대극에서 영화극으로
화면의 연락
클로즈업/대사(大寫)
5. 일본 신파와 서구 활극이 직조된 스타일
일본 신파영화의 조선적 번안
서구 활극과 블루버드 영화의 영향
# 05. 무성영화의 질적 전환(1926~1934년)
1. 〈아리랑〉 전후 무성영화계
2. 일본인 제작사와 조선영화인의 협업
조선키네마프로덕션
덕영프로덕션
대륙키네마프로덕션
경성촬영소의 원산프로덕션
3. 서구영화와 접속한 〈아리랑〉
〈아리랑〉 속의 〈카추샤〉
유럽 예술영화 사조의 영향
서구 활극 장르의 영향
4. 조선 무성영화의 스타일
시나리오와 촬영대본 분석
〈청춘의 십자로〉로 본 무성영화 스타일
일본영화 스타일과의 접점
5.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청춘의 십자로〉(1934)
# 06. 발성영화와 영화기업화의 모색(1935~1939년)
1. 발성영화의 시대
서구 토키의 수용
외국영화 상영 제한
2. 조선어 토키 제작
경성촬영소의 ‘협업(協業) 시스템’
조선인 자본의 한양영화사
3. 2세대 조선영화인
일본 영화촬영소 유학파
무성에서 발성으로, 스타일의 변화
4. 조선인 영화기업의 등장
〈나그네/다비지〉가 촉발시킨 일본영화 합작
최남주의 조선영화주식회사
이창용의 고려영화주식회사
조선영화 이출(移出)과 일본 수용
5.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미몽〉(1936)
〈심청〉(1937)
〈군용열차〉(1938)
〈어화〉(1938)
〈국기 아래 나는 죽으리〉(1939)
# 07. 조선영화의 전시체제(1940~1945년)
1. 조선영화의 새로운 국면
조선영화령과 영화신체제
전시체제 개편과 영화계
문화영화 제작
경성의 영화흥행
2. 조선영화에서 국책영화로
식민지/제국의 조선영화
조일 영화계의 교류
최인규의 영화
국책영화 제작 시스템
3.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수업료〉(1940)
〈집 없는 천사〉(1941)
〈지원병〉(1941)
〈반도의 봄〉(1941)
〈그대와 나〉(1941)
〈망루의 결사대〉(1943)
〈조선해협〉(1943)
〈젊은 모습〉(1943)
〈병정님〉(1944)
〈사랑과 맹세〉(1945)

맺는 말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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