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포인트]
살아 있는 캐릭터
이 책에는 캐릭터가 살아 있다. 어린이다운 어린이가 등장한다는 뜻이다. 어린이의 상상력이나 연상은 확실히 어른의 것과는 다르다. 새로 산 오리털 파카를 입으며 오리가 궁금해지는 건 참으로 어린이답다. 어른이라면 따뜻할까, 뚱뚱해 보이는 건 아닐까, 세탁하기는 쉬울까, 오리털 함량을 속인 건 아니겠지 등의 실용적인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까. 이른바 ‘동심’이라는 것이 어디에 맞닿아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을 읽고나면 주인공 아이가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아이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시각화에도 성공했다는 뜻이다. 단순하게 표현한 듯하지만 장면 하나하나 동작과 몸짓에서 주인공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오리하고 둘이 만세 부르는 장면이나, 마스크를 하고 학교에 가는 장면은 압권이다.
시각적 표현
요즘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외국 그림책의 홍수 속에서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지나치게 소박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이가 그린 듯한 천진한 선과, 과감하면서도 절제된 색채의 사용에서 지은이의 개성과 통찰력 있는 시각적 표현을 엿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선의 일관된 흐름에, 색연필로 쓱쓱 칠한 듯한 소박한 채색과,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먹과 주홍, 청색의 대범한 채색 방식을 대비시킨 점이 매력적이다. 먹과 연필 선으로 처리한 꿈속으로 빠져드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고, 열심히 오리에게 깃털을 심어주는 장면, 썰매 타는 장면 등도 재미있다. 창틀?거울?침대?방 등 현실 공간은 안정적인 사각형을, 오리?오리들의 행렬?언덕?산 등 환상 공간은 움직이는 삼각형을 시각적 알레고리로 활용한 점도 놀랍다.
동정의 상상력
어린이 책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강박관념이다. 그러나 교훈적이거나 인지 학습적 내용을 담은 그림책들은 도리어 어린이를 대상화시키기 쉽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래서,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려내는 미적 가치는 더욱 중요한지도 모른다. 깃털을 오리에게 돌려주고, 그 오리들과 신나게 노는 이야기에는 생명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이른바 ‘동정의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장면에서 밤새 오리들에게 다 심어준 줄 알았는데 남은 깃털 하나는 이 그림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로 날아간다.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다. 모든 어린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내용]
눈이 많이 온 날, 엄마는 내게 따뜻한 털옷을 사다 주셨다. 새 옷을 입고 거울을 보니 깃털 하나가 비죽 삐져나온 게 눈에 띄었다. 깃털을 들여다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오리들이 내 앞에 몰려와 있는 게 아닌가. 오리들은 털이 없어서 춥다고 했다. 나는 옷 속에서 깃털을 꺼내 오리들에게 하나하나 심어 주었다. 열심히, 열심히, 마지막 한 마리까지. 그러고 나서 오리들과 언덕으로 올라가 신나게 놀았다. 썰매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숨었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려고 했다. “에취!” 엄마는 내가 이불을 잘 덮고 자지 않아 감기에 걸렸다고 하셨다. 그게 아닌데. 옷 속에 든 깃털을 오리들에게 다 돌려주어서 그런 건데…. 그런데 이상한 일은 바람이 불자 내 옷에서 깃털 하나가 빠져 나온 거다. 오리들에게 모두 다 돌려주었는데, 참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