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최초 소개되는
일제 강점기 대표적 아동문학가들의 릴레이 소설
『소년 기수』는 일제 강점기에 아동문학가이자 소년운동가로 유명했던 연성흠, 최청곡, 이정호, 정홍교, 방정환 5인의 연작 소년소설로 기획되었다. 〈조선일보〉에 1930년 10월 10일부터 12월 4일까지 약 2개월간 릴레이로 연재되던 이 작품은 당시 네 번째 필자 정홍교가 집필한 38회를 끝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일제의 탄압에 맞서는 소년운동을 다룬 내용과 주제 의식 등이 당시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다섯 번째 필자로 작품을 마무리하기로 했던 방정환은 아예 참여조차 못 했다. 세월이 흘러 1946년 9월 정홍교는 자신이 썼던 38회 내용을 수정하고 뒷이야기를 새롭게 이어 써서 작품을 마무리했으며, 어린이날을 맞아 1947년 5월 동화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후 한국방정환재단 염희경 연구부장이 『소년 기수』 단행본 초판본을 근대서지학회 오영식 회장으로부터 제공받아 한국근대대중문학총서 틈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소개하게 되었다. 특히 2022년은 어린이날 100주년이고, 2023년은 잡지 『어린이』 창간 100주년이자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에 선포한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으로 대표되는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이다. 이런 시기에 일제 강점기 조선 소년운동의 문학사적 기록이 발굴되어 우리나라 현대 독자를 만나는 것은 무척 뜻깊은 일이다.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이었던 노마, 명순, 철마 삼 남매가
조선의 앞길을 인도하는 소년의 기수가 되기까지
『소년 기수』는 강원도 김화군 근동면 산골 하소리에 사는 김화보통학교 사 학년 김철마를 중심으로 형 노마, 누나 명순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난한 소작농 집안의 자식들인 삼 남매는 땅과 부모를 잃고 하나둘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신념을 실현하려고, 형제를 찾으러, 서울에 머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그 와중에 갖은 고초를 겪고 노마는 민족운동에 투신하며, 철마는 도시 공장 노동자가 되고, 명순은 인정 넘치는 고향과는 전혀 다른 도시의 냉혹함을 경험한다. 이렇게 삼 남매는 점차 조선과 민족의 참담한 현실을 깨닫고 계급 의식에도 눈뜬다. 소설의 마지막은 오월 첫째 일요일, 조선소년총연맹의 깃발 아래 어린이날 기념식을 갖는 장면을 담아낸다.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대표는 연설을 중지당하고, 철마가 높이 든 어린이날의 커다란 대표기를 선두로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며 어린이들이 시가 행진을 한다. 이때 철마는 마음속으로 ‘우리 조선은 반드시 광명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장래가 있다. 내 힘만을 굳세게 기르자-’라고 굳게 다짐한다.
『소년 기수』는 바로 민족의 갱생을 도모하는 전체 민족 운동 중에서도 근본 운동인 어린이 운동, 즉 소년운동을 기록하고자 집필되었다. 특히 서로 다른 사상과 조직을 기반으로 소년운동을 펼쳤던 5인의 소년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들이 연작 소년소설이라는 새로운 실험으로 당대 어린이들 앞에 놓인 삶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가, 혹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이 꿈꾸던 어린이 해방의 미래를 야심 차게 그린 작품이라는 데 큰 의의와 가치가 있다.
* 〈한국근대대중문학총서 틈〉 소개
한반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언어공동체이면서 독서공동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작품을 읽으며 유사한 감성과 정서의 바탕을 형성해 왔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 독서공동체를 묶기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만세전』이나 『현대 영미시선』 같은 책을 읽기도 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장터거리에서 『옥중화』나 『장한몽』처럼 표지는 울긋불긋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고 책을 펴면 속의 글자가 커다랗게 인쇄된 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 그중에는 우리 문학사에서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던 소설책들도 적지 않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낯선 작가의 작품도 있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있다. 본격문학으로 보기 어려운 이 소설들은 문학사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것들이다. - ‘발간사’ 중에서
발간사에서 이렇게 밝혔듯 〈틈〉 총서는 그간 한국 문학사에서 제대로 다뤄지거나 거론된 적이 별로 없었던 대중소설을 주로 소개할 계획이다. ‘본격문학’의 큰 흐름들 사이에서 그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잊혔던 작품들 중 오늘날 독자들에게 소개할 만한 것을 가려 재출간함으로써 근대문학사의 군데군데 빈틈을 채워 넣으려 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그 전후를 아울러 민중들에게 읽히고 상상력을 자극했던 작품들을 발굴한다. 과학소설, 탐정소설, 연애소설, 무협소설 등 그 장르도 다양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일찍이 학교에서 배우거나 들어 본 적 없는 소설들이지만 당대 대중들의 정서에 가장 가까운 욕망과 상상력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본 총서를 통해 근대 독서공동체의 모습이 조금 더 실체적으로 드러나리라 기대한다.
또한 〈틈〉 총서는 다양한 시각자료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친절히 소개하고자 한다. 소설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판을 본문 사이사이에 배치한다. 시대사적 의의를 짚어 주는 해제 작업 또한 본 총서의 중요한 부분이므로 책의 후반에는 문학연구자의 해설이 함께한다. 현장에서 한국문학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연구자, 교육자들로 구성된 기획편집위원회가 선정부터 해제, 주석 작업까지 책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