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 금수저의 인생 쓸모 추적기!
쓸모없고도 충실한 시간들에 관한 위대한 발견
개성 강한 스타일과 감각적인 색채로 주목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박요셉의 첫 번째 에세이. 박요셉 작가는 잡지와 단행본, 기업의 커머셜 및 컬래버레이션 등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 & 크리에이터이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면모는 바로 ‘위트’다. 분방한 상상력으로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익살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 세계는 한 편의 판타지 같다. 그런 그가 자신의 머릿속 세상을 한 권으로 압축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다. 바로 《겨드랑이와 건자두》이다.
이 책은 쓸모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지극히 충실했던 시간들에 관한 82편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과 생각들을 예리하면서도 기발하게, 유쾌하면서도 담백하게 풀어냈다.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면서 경험했던 클라이언트들과의 일화부터 놀라운 발견에 대한 흥분으로 망쳐버린 반려견 모모의 첫 생일, 분명히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대머리에 대한 비애,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 순서에 대한 특별한 고찰,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며 기름으로 반짝거리는 야키소바에 대한 열렬한 예찬, 죽음이 뻘건 혀로 자신을 휘감아 한참을 질겅질겅 씹다가 뱉어낸 듯한 고통의 이석증에 대한 소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삶의 단면들, 평범함을 거부하는 놀라운 발상과 재치 넘치는 전개를 통해 인생이 한없이 새롭고 즐거운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책의 부제에 ‘표류기’란 말이 붙은 것은 어느 한곳에 치우침 없이 흘러가는 대로 언제 어디서나 인생을 충분히 만끽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줌과 동시에, 독자들이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순서에 상관없이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이야기는 자연스레 연결된다. 표류하듯 시선이 닿는 곳 어디라도 좋다. 박요셉이 빚어낸 세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어느덧 평범한 일상도 반짝반짝 빛나고 놀랍도록 특별해진다!
목표나 계획과 반대로 살면 좀 어때?
누가 뭐래도 나는 오늘도, 아마 내일도 쓸 만한 존재다.
겨드랑이에서 나는 건자두 냄새처럼. 응?!
《겨드랑이와 건자두》는 겨드랑이에서 나는 건자두 냄새를 뜻한다. 누구도 주목하지도 않고 말하기조차 꺼려지는 그 꼬릿한 냄새조차 그에게는 관심의 대상이다.
이 책은 불현듯 떠오른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어째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걸까?” 저자가 서른 살이 되던 새해 첫날, 계획 없던 늦잠으로 인해 비참한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며 괴로워하던 중 머릿속을 스친 이 물음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뒤바꾼 새로운 물꼬였다.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지금의 내가 있고 나름대로 잘 살아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어쩌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들을 쓸모없다고 무시한 건 아닐까? 결국 우리를 이끈 것은 모두 쓸모없고도 충실한 시간들인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일상에서 발견한 작지만 소소한 감상들을 책을 통해 아낌없이 풀어낸다. 감히 말하건대, 그는 소확행의 끝판왕이 아닐까?
오늘같이 날카로운 바람의 모서리가 나를 난도질하는 날에는 더욱더 뜨거운 야키소바가 그리워진다. 추위를 뚫고 찾아가 야키소바 1인분을 포장한 뒤, 외투 소매에서 손가락만 간신히 내놓고 포장된 봉투를 달랑거리며 집에 돌아와 집이라는 것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야키소바가 담긴 그릇을 여는데, 기특하게도 아직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며 기름으로 반짝거리는 너를 마주하던 그때를 나는 아직도 기억해. 너는 마치 관우가 돌아올 때까지 초조해하지 않고 묵묵히 믿고 기다려준 그 술잔과도 같았지. 나는 그런 너를 접시에 덜 새도 없이 그만 입으로 와락 안아주고 말았는데. 보고 싶은 걸 꾹꾹 참고 아껴온 미드를 켜고, 입술을 번들거리며 느끼함에 지지 않도록 초생강을 조금씩 베어 무는 그 따뜻한 즐거움이 오늘 같은 날은 유난히 더 그립다. _〈야키소바〉 중에서
일러스트 작가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과 풍부한 표현력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달의 뒷면이 궁금한가요? 당신의 입속에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크기는 또 생각보다 커서 늘 입안에 있으면서도 용케 잘 씹히지도 않는다. 씹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요 해삼처럼 생긴 것이 평생 물에 잠겨 하루에도 몇 번씩 딱딱거리는 이빨을 피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안쓰럽다. 그리고 징그럽다. (…) 생각보다 충격적인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상대방의 말에 아무리 귀 기울여봐도 입속의 혀가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칭찬을 들어도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해삼에게 칭찬받는 기분이랄까, 여러모로 곤란하다. _〈달의 뒷면이 궁금한가요?〉 중에서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 일을 하면서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 등 거창하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곳곳에 묻어난다.
행복과 쾌감을 구분하기로 했다. 길고 긴 침잠 끝에 비로소 흐릿한 결말 같은 것을 마주했다. 둘 다 가질 수 있다면 행운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평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그럴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그것이 행복인지 쾌감인지를 조금씩만 더 고민해보고 나아가기로 했다. 둘 중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쾌감은 끊임없이 지속되지 않으면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마물 같은 것이다. 나는 이것을 능숙하게 다룰 수 없기에 되도록이면 행복을 선택할 생각이다. 아마도 모든 선택에 행복과 쾌감을 분리해나간다면 스스로가 내린 정의에 가까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최종 목적지가 검고 깊은 늪이라면 나는 있는 힘껏 행복감에 머리끝까지 잠긴 채로 유유히 나아가고 싶다. _〈흐릿한 결말〉 중에서
이 책이 그의 시선을 따라 낯선 세상을 여행하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